반응형
10월
그해 불던 바람이 가끔 찾아온다.
마른 강 언덕에 섰을 때 사정없이 내 뿌리를 흔들던
젊은 날의 잔혹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그림자들을 몽땅 몰고 와
걸어가던 길을 캄캄하게 가로막았다.
10월의 태양이 빛났지만
사나운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길가 은행잎은 황금빛으로 엉켜있고
오렌지 코스모스는 꽃물결 파도치는데
무수히 쏟아지는 열매들은
내 주머니에서 아주 멀리 도망쳤다.
서있는 것들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들만 피난처가 없다.
그래도 나는 황달 든 풀잎에 걸쳐 있는
실오라기 같은 햇살을 보았다.
공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으로 바뀌지만
끝까지 버티는 마지막 잎 새에
희망의 끈을 살며시 붙잡아 매두었다.
끈기 없는 잎들은 이미 뒹굴고
죽기를 결심한 잡초들은 길가에 스러졌다.
그러나 추색 완연한 10월 거리에서
지팡이 없이도 나는 힘 있게 걷는다.
어디선가 원두커피 향이 진하게 풍긴다.
2020.10.13
반응형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 하루의 일탈(逸脫) (0) | 2020.10.15 |
---|---|
잊힌 풍경 (0) | 2020.10.14 |
은행나무 (0) | 2020.10.12 |
가을 하늘 (0) | 2020.10.11 |
만목소연(滿目蕭然)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