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10월

신사/박인걸 2020. 10. 1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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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그해 불던 바람이 가끔 찾아온다.

마른 강 언덕에 섰을 때 사정없이 내 뿌리를 흔들던

젊은 날의 잔혹한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이 세상 그림자들을 몽땅 몰고 와

걸어가던 길을 캄캄하게 가로막았다.

10월의 태양이 빛났지만

사나운 바람을 이겨내지 못했다.

길가 은행잎은 황금빛으로 엉켜있고

오렌지 코스모스는 꽃물결 파도치는데

무수히 쏟아지는 열매들은

내 주머니에서 아주 멀리 도망쳤다.

서있는 것들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것들만 피난처가 없다.

그래도 나는 황달 든 풀잎에 걸쳐 있는

실오라기 같은 햇살을 보았다.

공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으로 바뀌지만

끝까지 버티는 마지막 잎 새에

희망의 끈을 살며시 붙잡아 매두었다.

끈기 없는 잎들은 이미 뒹굴고

죽기를 결심한 잡초들은 길가에 스러졌다.

그러나 추색 완연한 10월 거리에서

지팡이 없이도 나는 힘 있게 걷는다.

어디선가 원두커피 향이 진하게 풍긴다.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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