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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9

아버지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맨 발로 언 땅을 딛던 종달새가 파란 풀잎을 물고 꽃송이에 몸을 비빈다. 어느 봄날 발을 헛디뎌 깊은 수렁에 빠져 헤쳐 나오려 허우적거리다 목련 꽃 잎처럼 떨어져 가버린 당신의 애처로운 눈빛 같은 아지랑이가 어른거린다. 태산도 짓누를 빚더미에 경추를 눌려 사족이 묶인 채 어느 골짜기에 주저앉아 유배 자처럼 제한되었던 생애마저 무참하게 짓밟혔던 그 잔인한 기억에도 뿌연 연무를 일으키며 봄은 왔다. 할미꽃 무덤가에서 딸네 집을 굽어보고 살구꽃 곱장소(沼)굽어보며 피던 날 아리랑 구슬픈 가락 산 메아리에 태워 어느 하늘 너머로 날려 보내시며 하루하루를 버거운 빚짐을 벗어버리려 날선 도끼로 세월을 쪼개시던 당신의 일그러진 손마디를 나는 보았다. 자신의 꿈을 전당포에 맞기고 오로지 아르파공(Harp..

나의 창작시 2020.04.02

진노를 거두소서

진노를 거두소서. 세상은 속속들이 썩어 무법천지가 되고 사람들이 죄악의 냄새를 피우므로 이 하늘과 저 하늘을 활짝 열어 당신은 코로나 진노를 쏟아 부으시나이다. 직립보행자만 골라 숫자를 먹이시며 하나하나 독방에 가두시었다가 더러는 잔인한 형벌로 호흡을 회수하시니 이제는 숫자가 늘어 소름이 돋나이다. 앰뷸런스의 사이렌은 가슴을 찢고 콜록 이는 기침 소리는 총소리로 들려오니 제아무리 마스크로 울타리를 둘러도 파고드는 비말(飛沫)을 어찌 하오리이까. 산으로 숨으면 바이러스를 따돌리며 바다건너로 도망치면 안전지대가 있으리이까. 당신이 추적하시면 피할 곳이 없아오니 진노를 멈추시는 일 외에는 길이 없나이다. 무작위로 저주의 잔을 쏟아 부으시면 무고한 이들이 억울한 수난을 당하오며 약삭빠른 자들은 깊이 숨나이다. ..

나의 창작시 2020.04.01

혹독한 계절

혹독한 계절 살아오면서 몇 번의 겨울을 만났다. 공전을 멈춘 지구본을 걸을 때 한 여름에도 가슴은 얼음동굴이었다. 풀리지 않는 신발 끈의 비밀은 교과서를 뒤적여도 답이 없다. 가진 것이 없는 영혼이 복이 있다고 하나 그것은 사막 수도사의 교설일 뿐이다. 빈털터리 호주(戶主)의 목구멍에는 조석으로 면도날이 넘어갔다. 아이앰에프가 다시올까봐 나는 떨고 있다. 그 해 겨울 닫힌 철문을 열 수 없었고 가시 철망을 뚫을 절단기가 없었다. 숨이 끊어지던 단말마처럼 어두운 지하실에서 일흔 밤을 부르짖었다. 쏟아지는 잠을 창밖으로 내던지고 뛰는 심장 부근에 찬물을 끼얹으며 깊은 어두움이 자유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아도 나는 한 줄기 길을 찾으며 몸부림쳤다. 재앙이 화폐 위에서 일어나지는 않아도 해결의 열쇠는 그가 쥐고 ..

나의 창작시 2020.03.31

판데믹(대재앙)

판데믹(대재앙) 안전 안내 문자에 신경이 곤두선다. 코로나 확진자 4명, 스마트폰 메시지를 열면 서울시청, 화곡, 인천, 부천, 계양, 중앙재난 안전 대책본부 문자가 튀어나온다. 진달래 개나리 목련이 곱게 피지만 꽃향기마저 비말(飛沫)일까 겁이 난다. 마스크를 걸치고 왕래하는 사람들이 공포영화에서 만난 유령 같다. 오랜 만에 찾아온 아들 가족 앞에서도 나는 순간 이브의 세 얼굴이 된다. 판데믹이란 용어를 단어장에서 읽었다. 묵시록에서 경고하는 종말이 온 기분이다. 확진자 60만명, 사망자 3만명, 발을 구르는 통곡소리가 대기권에도 들리겠다. 보이지 않는 비세포성 생물이 그동안 맞섰던 강적보다 더 강하다. 석 달 째 지루한 혈투(血鬪)에 이제 지쳐간다. 휴전 없는 장기전에 인간이 질지 모른다. 방안에서 나..

나의 창작시 2020.03.30

은비(애완견)

은비(애완견) 信士/박인걸 뒷산을 오르다 예쁜 애완견을 만난다. 길짐승은 진달래꽃이 피고 져도 만개와 낙화의 희비를 모른다. 가파른 고갯길에 혀를 빼물고 오르지만 목적지가 있어서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산새들 재잘대며 노래를 부르지만 그 소리를 듣지 않는다. 오직 한 곬으로 주인 뒤만 붙잡는다. 개를 만나면 내 가슴이 허물어진다. 나도 그림 같은 말르티와 열 네 해를 살았다. 은비는 나를 아빠라고 불렀다. 은비가 영정 안으로 들어가던 날 다시는 개의 아빠가 되지 않겠다고 했다. 떠나가던 뒷모습에서 슬픈 노랫소리가 보인다. 자유를 주었지만 자유를 싫어했고 예속 된 삶을 은비는 자유라고 느꼈다. 본성을 잃어버린 인간이 갖지 못한 보석이 낮잡아보는 미물에서 별처럼 반짝였다. 망부석 설화보다 더 갸륵함이 은비..

나의 창작시 2020.03.29

어머니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가신 이에 대한 기억이 촛불처럼 흔들린다. 흘러가는 세월은 모정(母情)도 땅에 묻는다. 단풍잎이 첫눈에 꿈을 잃어버리던 날 꽃상여 속에 아픈 울음을 멀리 흘려보냈다. 햇빛이 자주 놀러 오는 언덕 빼기에 고운 이부자리 한 벌 깔아 드릴 때 산비둘기 몇 마리가 구슬픈 노래를 불렀다. 디디며 걸어간 땅이 하도 가파르고 사나워 차마 말끝을 잇기가 민망(憫惘)하다. 한숨에 취해 비탈길을 오르던 날 새까맣게 탄 가슴을 열어 보일 때 붉은 눈물이 뜨거운 폭포 되어 쏟아졌다. 질퍽한 흙탕물을 맨발로 밟고 헐벗은 온 몸이 가시에 할퀴어도 꾸러미로 매달린 자식을 털어내지 못해 응어리진 가슴을 세월로 삭였다. 불을 밟으며 걸어도 뜨겁지 않고 총알이 가슴을 뚫어도 피가 흐르지 않았다. 창자를 빼놓고 사는 모성(..

나의 창작시 2020.03.28

꽃이 핀다

꽃이 핀다. 3월의 말미는 화려하다. 가벼운 두 발이 젖은 흙을 밟는다. 저토록 고운 꽃은 어디서 누가 생산하여 허공에 좌판을 펼치고 곱게 진열하였을까 페루 고원에서 보았던 풍경이다. 작은 벌들이 바람을 가르느라 힘겹다. 기록에 남지 않는 거래가 활발하다. 이득을 보는 쪽은 꽃일까 벌일까 세상 누구도 수익 없는 활동은 하지 않는다. 나는 철없던 시절에 꽃을 꺾었다. 유통질서에 가한 타격을 후회한다. 무상탈취의 경제사범은 나쁜 죄질이다. 꽃이 피고 지는 일은 낭만이 아니다. 생명체들의 존립수단이다. 어떤 연인들은 나무아래 눕는다. 꽃비가 내리던 날의 기억이 아물거린다. 그땐 내 가슴에도 꽃이 피었다. 나는 꽃을 지우고 몇 개의 열매를 얻었다.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봄비가 아랫마을에서 올라온다한다. 걱..

나의 창작시 2020.03.27

어떤 나그네

어떤 나그네 나그네 하나가 길을 걷는다. 몽유(夢遊)를 즐기며 도원(桃源)을 간다. 모퉁이 하나를 돌아서자 눈 위의 기러기 발자국은 사라졌다. 이정표 없는 도시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별이 뜨지 않는 머리는 막막하다. 청춘을 실물시장에서 팔아먹고 허무의 올가미에 걸려 발버둥 치다 간신히 다다른 언덕에는 바람이 분다.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 방향을 알았을 때 날이 저문다. 리플레이 버튼을 엄지가락으로 눌러 걸어온 발자국을 꼼꼼히 살핀다. 잃어버린 시간들이 발자취에 쌓이고 지저분한 기억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리셋버튼을 발로 밟아 초기 화면으로 되돌리려 하나 잠겨놓은 누름 버튼은 열리지 않는다. 후회의 강물이 넘치는 들판에서 안경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을 때 다행히 하늘에 샛별이 떴다. 한 줄기 밝은 빛을 밟으..

나의 창작시 2020.03.26

어느 늙은이

어느 늙은이 시침(時針)에 매달려 태양을 돌았다. 세월의 동그라미 속에서 어지럼을 느끼며 안단테로 혹은 프레스토로 멈추지 않고 달려온 지점에 노인이 서있다. 살얼음판에서 두 귀를 곤두세우고 막대기 끝에서 발끝을 세웠다. 별을 손에 잡으려 아등바등하며 눈물골짜기를 건너와 보니 노옹이 웃는다. 거미줄처럼 얽힌 밤길에서 깨알 같은 공감각의 수수께끼를 풀며 촉각결여 증에 걸리면서 도달했는데 난청늙은이가 고목 곁에 서있다. 황영조를 내 안에 집어넣고 헉헉거리며 대관령을 넘어 온 것이 아테네의 월계관이 아니었다. 뒹구는 쭈그러진 밤송이 하나였다. 허수아비 초라한 발목이 어느 공동묘지 앞을 서성인다. 진달래 꽃 곱게 피어나는데 계절을 읽지 못하는 치매(癡呆)가 된다. 2020.3.25

나의 창작시 2020.03.25

진달래 꽃

진달래 꽃 종달새 하늘 높이 날아드는 삼월 스무닷새 날 어느 숲길을 걷는다. 진달래꽃 무리지어 피어나고 그 옆에 생강나무 꽃 곱다. 순정이 싹트던 그해 나는 널 알았고 진달래 꽃 한 아름 꺾어 네게 안겨 줄 때 꽃빛깔 보다 더 붉게 수줍어하던 너의 고운 얼굴이 그립다. 첫 몽정에 한창 수줍던 나는 너만 보면 가슴은 화덕이 되어 멀리서도 너의 뒷모습을 훔쳐보았다. 한 마디 고백도 없이 너는 멀리 떠났고 지금껏 나는 너를 그리워한다. 앳된 가슴에 옵셋 인쇄된 네 얼굴은 아직도 곱게 웃고 있고 봄 나비 꽃 찾아 노닐 때면 그리움에 열감기라도 앓을 것만 같다. 너는 나를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진정 네가 그리워서가 아니라 그 때 추억이 꽃처럼 고와서이다. 2020.3.25

나의 창작시 20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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