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혹서(酷暑)

신사/박인걸 2020. 6. 2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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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서(酷暑)

 

아직 장마가 오지 않았다.

찜통더위에 가로수가지가 늘어지고

바람마저 놀라 달아나버렸다.

끓을 것 같이 달궈진 아스팔트 위를

마찰음에 비명을 지르며 자동차들이 달린다.

내 젊은 시절 격렬했던 꿈들은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종횡무진하며

한 겨울에도 한증막 같았는데

그 열정은 백발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간단없이 달려 온 먼 길에서

일말의 후회 없이 젊음을 불태우며

어떤 때는 어금니를 악물고

물구나무서기로 여울목을 건넜다.

열사(熱沙)의 땅을 맨발로 지저 밟고

혹한의 벌판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방망이질 하던 꿈들도

영화 화면처럼 까뭇이 사라졌다.

활화산같이 타오르던 열정(熱情)도

재만 남은 바닷가 모닥불이다.

혹서(酷暑)는 세상에 불을 지르는데

봉력(鳳曆)은 가슴에 불을 끄니 슬프다.

하지 무렵의 대낮은 쇠화덕이다.

20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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