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설에 대한 기억

신사/박인걸 2025. 1. 26.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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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에 대한 기억
  •  
  • 가파른 언덕 너머로
  • 흙먼지 바람 사정없이 지나가면
  • 초가집 굴뚝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 가난은 무겁게 내려앉았으나
  • 설은 언제나 새 나이를 데려왔다.
  •  
  • 어머니는 손끝으로 만두를 빚고
  • 작은 손들엔 갈라진 겨울이 스며들었다.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찌는 향
  • 우리는 배고픔을 꿈으로 달래며
  • 해어진 옷을 입고 설날을 기다렸다.
  •  
  • 속내의 한 벌 없는 추운 설날이지만
  • 우리의 눈동자는 맑게 빛났고
  • 새 신발 대신 맨발로 밟은 눈길
  • 발가락이 얼어붙는 차가움 속에서조차
  • 우리는 웃음으로 발자국을 남겼다.
  •  
  • 섣달 그믐 등잔불이 가물거리는 방에는
  • 날밤을 새며 설날을 기다리던
  • 낡은 집 흙벽에 비친 또렷한 그림자 하나
  • 깊은 가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 우리가 가진 가장 따스한 유산이었다.
  •  
  • 이제는 모두 떠나버린 그 시간
  • 그 가난했던 설날의 풍경은
  • 낡은 꿈처럼 희미해졌지만
  • 그 안에서 피어난 조촐한 온기는
  •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이유였다.
  • 20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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