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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에 대하여
꽃처럼 붉고 푸르던 젊음은
바람결에 떠밀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늙은 누에 섶 기어오르듯 굼뜬 몸짓 서럽다
그믐밤 같던 머리카락 어디로 갔나.
흰 서리 가닥마다 내리니
늙은 내 아버지 판박이, 거울이 두렵다.
세월이 빼앗아 가버린 꿈은
죽은 나무 삭정 끝에 매달아놓고
두 주먹을 다져 쥐며 소리치던 용기도
쥐구멍으로 꼬리를 감췄다.
의욕은 아직 일어서는 산불 같지만
느린 몸동작은 연실 헛 페달을 밟는다.
장밋빛 보다 붉고 강낭콩만큼 푸르던
젊은 날의 뜨겁던 사랑도
이제는 타다 식어버린 잿빛추억일 뿐
남은 날들은 일력(日曆)처럼 한 장씩 줄어만 가고
하나하나 버려야 하는 순간들이
오래 된 빚쟁이처럼 다가온다.
석양 길을 걸어가는 내 발자국 소리에도
내 가슴이 아르르 저며 온다.
일생의 영욕이나 숫하게 쌓인 오해도
등산 배낭처럼 벗어버리라.
고뇌와 번민의 늪지대에서 헤맸던 기억도
종량제 봉투에 담아 투척하리라.
아! 인생이란 이토록 쓸쓸할 줄이야
붉게 물든 석양노을 앞에서
허무가 그림자처럼 길게 드리운다.
20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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