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비오는 날의 상념

신사/박인걸 2020. 5. 2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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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상념

 

오늘 또 비가 내린다.

주차장 곁 마로니에 나무는 연실 빗물을 털고

지고 있던 꽃잎이 무거워 스러진다.

아파트 발코니에서서 바라만 볼 뿐

나는 도와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우산을 든 아이는 나무 밑을 걸어가고

우비를 입지 않은 여자가 어디론가 뛰어간다.

길고양이 한 마리는 배가 고픈지 울고

비에 젖은 비둘기 두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다.

비는 아무도 구분하지 않고 내린다.

가림 막이 없으면 누구나 비를 맞는다.

어느 해 큰 비가 쏟아지던 해

불어난 강물에 동갑내기가 떠내려갔다.

그 아이 아버지가 물살에 뛰어들었지만

아들의 손은 붙잡고 나오지 못했다.

다른 해에 억수로비가 내리던 날

다리가 끊겨 나는 집에 갈 수 없었다.

강둑에 앉아 건너다보며 마냥 울기만 했다.

비는 고운 추억을 낳기도 하지만

슬픈 사연의 넋두리를 읊게도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죽던 날은 여지없이 비가 왔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른 땅이 없다.

질척거리며 젖은 땅을 걸어야한다.

오늘도 틀림없이 누군가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202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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