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작은 행복

신사/박인걸 2020. 6. 22. 03:39
반응형

작은 행복

 

자귀나무 꽃 공작 깃털같이 나부끼고

밤꽃 비릿한 냄새 야릇한데

느티나무 사열한 둘레 길을 걷노라면

시달리던 내 영혼이 행복에 겹다.

나무 그늘은 장막처럼 드리우고

숲에 세척한 바람은 상쾌하기만 하여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날

흙 익는 냄새에도 잔뜩 취한다.

칡넝쿨이 마구 엉겨 붙어

보랏빛 꽃을 피우며 영토를 확장하고

때 죽 나무 꽃 진 자리에는

비밀스런 열매들이 곡예를 두려워 않는다.

혼탁한 대기에 둘려 쌓인 여름 산은

심(甚)한 감기 몸살을 앓아도

도심을 벗어난 나는 자유를 누린다.

두드러지게 말끔한 후박나무 한 그루

잡목들과 비교된 풍경에 고무된다.

두 사람에게 나는 많이 속았고

세 사람의 위선에 진저리가 났는데

거래가 없는 숲에서 영혼이 맑은 숨을 쉰다.

어머니 자궁만큼이나 고요한 평화가

내 정수리까지 차오르고

모래알처럼 퇴적되던 도시의 고독이

숲에서 일어난 향기(香氣)에 허물어진다.

우연히 걸어 온 둘레 길에는

주황빛 산나리 꽃이 웃으며 날 반긴다.

2020.6.21

반응형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서(酷暑)  (0) 2020.06.24
감자 밭  (0) 2020.06.23
마로니에 나무 그늘  (0) 2020.06.21
도고(禱告)  (0) 2020.06.20
금계국(金鷄菊)  (0) 2020.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