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광풍(狂風)

신사/박인걸 2020. 8. 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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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狂風)

 

바비가 올라온다기에 마음 조였다.

볼라벤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서다.

옹진반도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안도했다.

바람소리는 나를 언제나 긴장케 하고

전깃줄이 귀신우는 소리를 지를 때면

이불모서리로 귀를 틀어막는다.

철없는 시절에는 바람소리를 즐겼다.

거친 언덕에 올라 일부러 두 팔을 들고

달려드는 바람과 맞부딪치며 놀았다.

매미와 볼라벤이 가슴에 칼자국을 남긴 후

나는 바람소리를 지독하게 미워한다.

육십 척 철탑위에 맨손으로 매달린 채

파도처럼 달려드는 볼라벤을 떠밀며

까마득한 아스팔트길을 쳐다보며 느끼던 공포는

교수대에 선 죄수의 떨림이었다.

산위에서 불어오던 산들바람이나

강변을 훑고 지나가던 훈풍이 아니다.

징기스칸의 군대처럼 파죽지세로 덤벼드는

이름도 생소한 늦여름 광풍은

광기(狂氣) 들린 야만 식인종이다.

바람은 왜 가끔 이렇게 미쳐 날뛰는가.

영토를 빼앗겨 울분을 참지 못하는가.

자식을 잃어 자괴감에 빠졌는가.

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기 힘들어선가.

그렇더라도 그렇게 정신없이 날뛰면

선량한 나는 두려움에 날밤을 샌다.

광풍아 나는 바람 없는 세상을 꿈꾼다.

제발 나를 가슴 조이게 하지 말아다오.

20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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