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봄의 전령(傳令)

신사/박인걸 2022. 2. 27. 05:40
  • 봄의 전령(傳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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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하 십오 도의 수은주에서
  • 가지를 붙잡고 살아남은 버들강아지가
  • 봄 햇살에 일어서서 춤을 춘다.
  • 노란 꽃망울을 가슴에 안고
  • 얼음장 밑에서 잠자던 복수초도 고개를 내민다.
  • 고엽(枯葉)에 붙어 겨울을 보낸
  • 노랑나비는 봄 햇살을 타고 날갯짓하며
  • 아무 언덕이라도 가볍게 날아오른다.
  • 새봄을 맞는 온갖 뜰에는
  • 끈질긴 생명이 살아 숨 쉬고
  • 잔혹한 죽음을 딛고 일어선 목숨은
  • 각양 꽃송이로 변신할 채비를 갖춘다.
  • 봄은 아무 항변도 없이
  • 지축을 울리는 아우성도 없이
  • 조용히 너무도 조용하게 의병처럼 일어선다.
  •  
  • 지난 늦가을 하나둘 꽃은 떠나고
  • 붉게 폭발하던 단풍잎까지 낙하하던 날
  • 내 가슴은 돌에 맞은 듯 아팠고
  • 들길을 걷던 발걸음은 휘청거렸다.
  • 내가 지독하게 싫어하는 겨울을 증오하며
  • 도살장 앞에 선 염소처럼 떨었는데
  • 파발마를 타고 달려온 사자(使者)처럼
  • 봄의 전령이 동장군(冬將軍)을 몰아낸다.
  • 또 한 번의 봄에 나는 감격한다.
  • 202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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