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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꿈

잡초의 꿈 짐승에 밟히고 때론 인간에게 밟혀도 잡초는 다시 일어선다. 조상 적부터 잡초로 살아와 밟히는 일에 이골이 났다. 자신들의 신분을 알기에 화초를 부러워하거나 인간들이 북돋아 주는 채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맨몸으로 태어나 비바람에 휘청거리며 까만 밤이면 두려움에 떨지만 아침 햇살을 기다리며 기나긴 시간을 견딘다. 농부가 휘두르는 낫날에 사정없이 몸이 잘려나가도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새 순으로 돋아나 저항한다. 잡초의 시들지 않는 꿈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고 사막을 풀밭으로 바꾸며 삭막한 도시에 풀 냄새가 풍기는 자기들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전봇대와 콘크리트 담벼락까지 인간들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 오고 싶어 오늘도 안간힘을 다해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있다. 2010,10,8

나의 창작시 2010.10.22

들국화

들국화 누구의 영혼이 연보랏빛으로 꽃잎에 스며들어 찬바람이 일 때면 밤이슬을 맞으며 곱게 피는 걸까 여름 내내 풀숲에서 잡초로 살아온 세월 흠모할만한 모양은 네게 없어도 쓸쓸한 가을 들판을 우아하게 하는가. 나 먼먼 길 돌고 돌아 허비한 세월 기우는 석양 하늘아래 너처럼 고운 빛을 뿜을 수 있을까 찬 서리 내린다 해도 두렵지 않은 강인한 들국화여 네 모양이 마냥 부럽다. 2010,10,15

나의 창작시 2010.10.22

가을 산

가을 산 하루가 다르게 짙어만 가는 가을 산이 황홀하다. 핏빛처럼 붉은 단풍잎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영원으로 들려 한다. 비바람 치던 날과 별 빛만 서럽던 밤 아무도 찾지 않던 외딴 산자락에서 외롭게 지내 온 세월 고독을 밤이슬에 닦고 눈물을 햇볕에 말리며 밤이면 달빛과 속삭이더니 꽃 보다 더 곱구나. 모든 죄를 자백하고 불타는 욕망을 내려놓고 가슴을 비우고 나니 저토록 곱기만 하구나. 2010,10,19

나의 창작시 2010.10.22

가을에 올리는 기도

가을에 올리는 기도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쳐다보기 조차 민망한 못다 털어낸 욕망의 깃털들이 부유물처럼 떠다닙니다. 그토록 따사롭던 여름 햇살에 퉁퉁 부어오른 씨방마다 탐스런 과실들 농익을 때 나만 아직 여물지 못해 노을은 석양에 걸려 있고 오색 단풍잎은 앞마당까지 내려왔는데 철늦은 플라다나스 잎처럼 아직도 나는 시푸릅니다. 언제나 한 발 늦게 꾸물대는 나무늘보처럼 좋던 계절 다 흘러 보내고 이제야 뒤늦게 후회하노니 한 뼘 남은 가을 햇살을 놓치지 않게 하셔서 늦게 피는 국화 송이처럼 나도 우아하게 하소서. 2010,10,22

나의 창작시 2010.10.22

풀 밭에 오면

풀밭에 오면 시인/박인걸 풀밭에 오면 풀 피리소리가 들린다. 풀 베던 소년이 주저앉아 그리움을 실어 보내던 소리가 풀밭에 서면 어릴 적 내가 보인다. 풀 섶을 휘저으며 꿈을 캐던 해맑은 소년이 풀밭에 앉으면 활짝 웃는 소녀가 보인다. 순수했던 그 시절 꽃반지 끼어 주던 그녀가. 풀밭에 누우면 어머니 품이 그립다. 뭉게구름 보다 더 포근한 어머니 치맛자락이. 2010,6,12

나의 창작시 2010.06.12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꽃 시인/박인걸 가시에 찔리며 피었기에 속살은 더욱 희고 萬苦고의 아픔을 견디었기에 꿀은 더욱 단가보다. 속으로 곪은 가슴에서 내뿜는 짙은 향이 기에 온갖 벌 나비를 취하게 하는가 보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한 뜸 한 뜸 떠내려가던 나의 어머니 이불 보 자수(刺繡)로 새긴 꽃이여 바라만 보아도 가슴 가득 출렁이는 포도송이보다 소담한 어머니 향기 같은 꽃이여 2010,5,29

나의 창작시 2010.05.29

간격(間隔)

간격(間隔) 시인/박인걸 달과 해의 거리가 멀 듯 사람 사이에도 먼 거리가 있지만 별들이 모여 반짝이듯 가까워 행복한 사이도 있다. 해는 뜨거워 달아오르고 달은 차가워 시리니 둘은 만나면 불행하지만 별들은 서로 껴안을 때 즐겁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임계(臨界) 거리가 좋다는데 그대와 나의 거리는 어디쯤일까 가까이 하기엔 너무 아득하다 좁힐 수 없는 간격이라면 바라만 보는 것만도 행복하니 언제나 그 자리에서 도망하지 말아 주었으면

나의 창작시 2008.08.12

겨울 산길에서

겨울 산길에서 오그라든 가랑잎 위로 첫눈이 솜처럼 내릴 때면 함박 웃는 그대가 눈이 온다며 달려올 것 같아 자작나무에 기대어 오솔길만 바라보고 서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은 아득하게 멀어져 가지만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이면 꺼져가던 불씨처럼 살아나 그대가 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기다리고 서 있다. 첫 눈이 내릴 때쯤이면 숲은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깊은 잠자리로 드는데 헛된 욕망을 가득 품은 나는 왜 여기서 서성이는 걸까. 가던 길도 지워지고 돌아갈 길도 지워지는데 기다림으로 떨고 있는 이 숲에 그대여 여기에 오려거든 온 천지 뒤 덮는 함박눈으로 찾아와 다오.

나의 창작시 2007.12.02

나팔꽃의 기도

나팔꽃의 기도 시인/박 인걸 줄 사다리에 몸을 싣고 당신이 그리워 오르고 또 오릅니다. 밤길이 어두워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보랏빛 등을 길목 마다 밝혔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내 마음도 크게 흔들려 여기서 그만 멈출까 그러나 그럴 수 없습니다. 된 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는 당신을 보고 싶지만 그리 못할지라도 내년에 다시 오르기 위해 작은 씨앗을 묻어 두었습니다

나의 창작시 2006.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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