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새벽안개

신사/박인걸 2022. 9. 30. 07:22
  • 새벽안개
  •  
  • 구월의 끝자락에
  • 새벽 안개가 도시에 연막을 뿌렸다.
  • 아파트와 빌딩과 빌라를 지우고
  • 낮은 언덕까지 몽땅 집어삼켰다.
  • 연막을 뚫고 나온 자동차를
  • 안개는 쫓아가면서 지운다.
  • 엔진 소리만 도시 하늘에 뿌려놓고
  • 자동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  
  • 고달픈 이들이 밤새 피운 담배 연기인지
  • 어느 전장에서 날아온 포연(砲煙)인지
  • 고단한 이들을 위해 덮어버린 신의 이불인지
  •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가 없다.
  • 출처도 근원도 알 수 없는 새벽안개는
  • 거대한 가마솥에서 쏟아지는 김처럼
  • 새벽길을 걷는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  
  • 안개는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을 보듬고
  • 도시 길가 시달린 풀잎에 눈물을 뿌린다.
  • 총총히 빛나는 별빛과
  • 실눈썹의 하현달마저 깊은 하늘에 가두었다.
  • 도시 족제비들이 안개에 길을 잃고
  • 가을 귀뚜라미의 노래도 안개에 멈추었다.
  •  
  • 안개는 도시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트린다.
  • 바쁘게 사는 사람과 사나운 사람
  • 새벽을 깨우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까지
  • 천천히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라 한다.
  • 승천하지 못한 기체의 일시적 위로가
  • 햇빛에 사라지기까지 나의 가슴을 어루만진다.
  • 마치 어머니의 손길과 같다.
  • 2022.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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