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어떤 소나무

신사/박인걸 2022. 9. 28. 12:07
  • 어떤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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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도서관 정원의 소나무 몇 그루
  • 미인송을 넘어 예술송이라 부르련다.
  • 형용사를 동원해도 표현할 길이 막막하고
  •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도 떠오르는 시구(詩句)가 없다.
  •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갔어도
  • 독야청청한 이 솔(率)은 천년을 살으리.
  • 백당나무 열매 빨갛게 익은 숲길에
  • 사단 병력 집합한 듯 사열한 소나무들이
  • 옥합을 깨트려 머리에 부은 듯한 진한 솔향이
  • 천지진동하던 그 길을 걸을 때
  • 아무런 방해나 제약 없이 들이마시던
  • 나만의 포식은 행운이었다.
  • 맑은 가을 하늘이 마을을 휘장처럼 덮고
  • 붉은 산사가 가지 끝에서 까마귀를 불러모을 때
  • 솔숲을 휘돌아 내려온 가을바람은
  • 진한 향기를 폭포수처럼 마을에 쏟아 붓곤 했다.
  • 소나무 아래 서기만 하면
  • 대마초에 중독된 아편쟁이처럼
  • 비틀거리며 몽롱한 정신에 빠져든다….
  • 다른 나무들 나목일 때 옷을 입고
  • 오색 활엽 가을 산을 물들일 때
  • 오로지 푸른 빛 하나로 절개를 지키는
  • 그 의지에 매료된 나는
  • 지금껏 소나무를 어떤 성자처럼 동경했다.
  • 오늘 그 소나무 아래 나는 서 있다.
  • 202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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