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편린(片鱗)

신사/박인걸 2022. 9. 27. 02:41
  • 편린(片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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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종일 적막에 휩싸였다.
  • 그곳에는 가끔 삼 판 트럭이 지날 뿐이었다.
  • 거기는 물레방아 도는 소리도 없었고
  • 전봇대 하나 서 있지 않았다.
  • 햇빛은 무작정 쏟아지고
  •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날 보드란 살이 까맣게 타도
  • 강 건너 나무 그림자는 건너 오지 않았다.
  • 바쁜 강물은 여울 소리를 냇가에 흘렸고
  • 이름 모를 새들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 유독 내가 사랑했던 달맞이꽃만
  • 도랑 가에서 활짝 웃었고
  • 땅굴을 뚫으며 다니던 두더지가
  • 실수로 뒷마당에 기어 다니던 날에
  • 나는 아주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 동네 아줌마들은 콩밭에 숨어있고
  • 남자들은 망태기를 지고 산으로 숨었다.
  • 그런날에는 오래된 집이 두려웠다.
  •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끼질 소리와
  • 가끔 소(牛) 우는 소리가 앞산에 부딪히면
  • 어린 나는 울던 울음을 그쳤다.
  • 어머니는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멀리갔고
  •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다릿골로 갔다.
  • 나는 텅 빈 집을 버리고
  • 파란 나비를 쫓아 풀밭을 헤맸다.
  • 황금빛 노을이 지붕을 덮을 때면
  • 냇가에 누워있던 암소가 걸어들어왔다.
  •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편린(片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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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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