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에 대하여
결국 그길로 가는구나
소립자들이 모여 형체를 이뤘던 존재들이
영화 화면처럼 사라지는구나
여름에 발롱발롱피어나던 꽃망울들과
제 나름대로 생긴 열매들도
시효유예 없이 유배가 집행되었구나.
내 눈동자를 충혈되게 하던 단풍들도
일제히 낮은 곳으로 모여들고
보이지 않는 강물에 휩쓸려
기억의 외곽으로 떠내려가는구나.
철 따라 감미롭게 들려주던
조성(鳥聲)들의 무수한 색깔들도
잊어버려 생각이 아득한 숲에는
쓸쓸함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는구나.
길거리를 활보하던 주인공들이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고
영상화면을 도배질 하던 주인공들도
써거스어릿광대처럼 사라졌구나.
초겨울비에 함빡 젖은 나뭇잎 뒹굴 듯
예외 없는 소멸이 슬프기만 하구나.
20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