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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가는 길
그토록 푸르든 젊음은 떠났다.
싱그럽고 풋풋했던 시절도 빛이 바랬다.
꿈, 낭만, 패기, 열정도 뒤안길로 사라지고
찢어진 깃발처럼 빛바랜 잎들만
텅 빈 가지에 매달려 펄럭인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며
찬란한 색상을 자랑하던 단풍잎들이
살아온 삶의 이력서를 자랑했는데
찬 바람 몇 번 사정없이 훑고 간 뒤
감찰사의 눈에 난 벼슬아치들처럼 잎들이 졌다.
내가 평소에 꿈꿔온 마지막은
곱게 짠 비단에 한 마리 학(鶴)을 수놓아
붉은 노을빛에 깊이 담그는 일이었다.
지나온 길은 삭막한 황야(荒野)길이였으며
가도 가도 끝을 모를 안개길이었다.
때로는 길 잃은 한 마리 따오기가 되어
별빛마저 사라진 밤하늘을 쳐다보며
처량한 노랫조로 목이 메도록 울었었다.
그래도 가슴에는 희망의 불씨를 담아 놓고
갯벌에 정박한 한 척의 배처럼
밀물이 밀려올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며
캄캄한 시간들을 쌍 메질했다.
그렇게 싸워온 지난 날의 삶들도
시간과 싸워 이길 장수(將帥)는 없다.
이제는 모든 꿈을 책장처럼 접어 놓고
긴 침묵속으로 걸어들어가련다.
20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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