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기우는 계절

신사/박인걸 2021. 8. 21. 19:38

기우는 계절

 

그토록 작열하던 태양도

한풀 꺾기여 조금씩 비틀거리고

불 화덕 속에 갇혔던 도시 거리는

마침 쏟아진 소낙비에 기지개를 편다.

하늘 중심으로 걸어가던 태양은

왼쪽 깜빡 등을 켠 채 노선을 바꾸고

서산머리를 돌아 넘을 때면

노을 빛 하품을 하늘 높이 토한다.

느티나무 잎사귀들과

유독 푸른 플러터너스 이파리들도

기우는 계절에 대하여 민감하다는 것을

오래 살다 보면 감으로 안다.

떠돌던 그림자들은 점점 짙은 색깔로

네모난 빌딩 밑으로 모여들고

종적을 감추었던 귀뚜라미 찾아오고

악을 쓰며 울던 매미들은 멀리 도망친다.

계절이 서서히 기울어 갈 때면

마음 한 구석에는 갈대꽃이 휘날리고

그리운 이 멀리 떠나간 듯

말 못할 쓸쓸함이 밤안개처럼 가슴에 내린다.

아직은 태양이 황경 백오십도에 있지만

찬 이슬 풀 섶에 내리는 날이면

또 한 해를 잃어버린다는 두려움에

가슴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내려앉겠지.

202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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