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긴 여로
- 내가 거기서 첫출발하던 날
- 작은 마을은 텅텅 비어있었고
- 살짝 드러누운 비탈 밭이랑에는
- 흰 눈이 광목처럼 널려있었다.
- 문어발처럼 뻗어 내린 산맥은
- 숫한 이야기들을 골짜기에 채웠고
- 그 속 에서 자라온 나는
- 자연이 준 심장으로 계절을 노래하였다.
- 꽃 비 내리던 오솔길과
- 단풍잎 쏟아지던 오르막길을
- 아무 목적도 없이 걸어도 행복했다.
- 눈이 퍼붓던 벌판을 움츠리고 걷던 날에는
- 여름 소낙비를 그토록 그리워했다.
- 느릅나무에서 속잎이 돋아나던 계절에
- 내 꿈을 백 척 가지위에 걸었고
- 늦가을 달이 호수에서 목욕하던 날에
- 콜럼버스의 후예가 될 것을 결심했다.
- 지독한 탐험의 세월은 낡은 일기장에 갇혔고
- 아슬아슬한 삶의 곡예들은
- 언제나 나를 새로운 세상에 세웠다.
- 긴 긴 여로에 이제는 기운이 빠졌지만
- 아직은 가득한 비경을 따라
- 마음에 작정한 그곳까지 걸어야 한다.
- 202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