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빗물

신사/박인걸 2021. 8. 24. 21:13

빗물

 

늦여름 비에 빗물이 고인다.

사방에서 흘러 온 빗물이

우묵한 곳에 가득 가득 고인다.

가득 고인 빗물은 다시 길을 찾아 떠난다.

그 빗물은 돌고 돌아 어디론가 사라진다.

배롱나무 붉은 꽃 하염없이 피어나고

울밑 봉숭아 흐드러지게 피던 날

어린 누나 손톱 꽃물들이던 까만 기억에

세월의 징검다리 끝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왕잠자리 하늘높이 날아오르고

잎들 누릇누릇 가을을 알리던 날

나의 신분이 나그네인 걸 깨달았다.

오늘 내리는 빗소리는

틀림없이 또 한 계절을 데리고 멀리 떠나고

몇 밤만 자고난 빈 자리에는

가을이 나그네를 데리러 문밖에 서 있을 거다.

하늘가를 표락하던 늙은 나그네는

쏟아지는 빗소리에 많이 초조하다.

곧 낙엽 지는 소리를 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리는 빗물은 왜 그런지

자꾸만 가여운 노심(老心)을 각성시킨다.

202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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