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잎사귀들

신사/박인걸 2021. 8. 17. 17:44

잎사귀들

 

잎사귀들이 모두 찢긴 건 아니다.

벌레에 갉히고 바람에 찢긴 잎들은

어쩌다 재수가 없었을 뿐이다.

우거진 수풀을 헤쳐 들어서면

잎사귀들이 잡티 하나 없이 곱고 씩씩하다.

우유 빛 소녀의 얼굴처럼

녹색 물오른 이파리들의 원형을 보노라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경구(經句)가 떠오른다.

서걱 거리며 출렁이는 갈대 잎들과

누워서 안연히 살아가는 칡잎들

식물백과를 들춰야 알아낼 이름의 풀들이

논산훈련소 병사들처럼 싱싱하다.

한 여름 폭풍이 풀대를 잡아당길 때도

자기들끼리 견디며 살아남고

가을이 되면 형형(炯炯)의 빛깔로

곱게 늙으며 길게 눕는다.

숲이 저토록 푸른 건

억척같이 살아 준 잎 새 들 덕분이리라.

202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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