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9월 어느 날
봄에 아내와 거닐던 둘레 길은
에덴의 동쪽 한 모퉁이였다.
인간이 처음 뛰놀던 환상의 땅이며
내가 돌아가고픈 하늘 길이었다.
풀잎도 나뭇잎도 피어나는 꽃들도
온통 새것들로 가득 가득해
한 시간만 걸어도 나는 새 인간이었다.
여름이 지나간 가을 길목에서
찢기고 상한 이파리들과
고약한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서
숫한 상처의 신음이 들린다.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날이었는데
그 날의 정취는 흔적이 없고
빨래 줄에 걸린 헌 걸레조각처럼
후줄근한 잎들이 불쌍하다.
가을은 여문 알맹이들을 내 손에 쥐어주는데
그 열매들은 숲의 응고 된 진액이었다.
우연히 만진 어머니의 뱃살에서
바람 빠진 풍선을 보았는데
그 역시 내 탯줄이 빨아버린 모성의 껍질이었다.
개금 열매를 품고 있는 찢어진 잎에서
나는 어머니의 뱃살을 본다.
태풍 지나간 산기슭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2020.9.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