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9월 어느 날

신사/박인걸 2020. 9. 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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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어느 날

 

봄에 아내와 거닐던 둘레 길은

에덴의 동쪽 한 모퉁이였다.

인간이 처음 뛰놀던 환상의 땅이며

내가 돌아가고픈 하늘 길이었다.

풀잎도 나뭇잎도 피어나는 꽃들도

온통 새것들로 가득 가득해

한 시간만 걸어도 나는 새 인간이었다.

여름이 지나간 가을 길목에서

찢기고 상한 이파리들과

고약한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서

숫한 상처의 신음이 들린다.

한 뼘도 안 되는 짧은 날이었는데

그 날의 정취는 흔적이 없고

빨래 줄에 걸린 헌 걸레조각처럼

후줄근한 잎들이 불쌍하다.

가을은 여문 알맹이들을 내 손에 쥐어주는데

그 열매들은 숲의 응고 된 진액이었다.

우연히 만진 어머니의 뱃살에서

바람 빠진 풍선을 보았는데

그 역시 내 탯줄이 빨아버린 모성의 껍질이었다.

개금 열매를 품고 있는 찢어진 잎에서

나는 어머니의 뱃살을 본다.

태풍 지나간 산기슭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20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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