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여름이 간다.

신사/박인걸 2020. 9. 7.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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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간다.

 

귀뚜라미 구슬프게 새벽부터 울고

늦호박 꽃잎에 주름이 깊다.

한 낯 내리 꽂던 햇살도 풀이 죽었고

매미들만 아직 자지러지게 운다.

능소화 끝물도 맥없이 땅에 뒹굴고

배롱나무 꽃 피었던 길이 허무하다.

일에 미친 도시는 꽃이 지는지도 모른다.

차들은 앞만 보고 달리고

간판은 대낮에도 불을 켜고 이목을 끈다.

길거리를 왕래하는 자들은

일에 매달려 어디론가 끌려가고

빌딩 안에 갇힌 자들은 비틀거릴 뿐이다.

밤알이 가시송이에서 익어가고

고개 숙인 벼이삭은 참새 습격을 받으며

길가 코스모스가 가을 춤을 추는데

콘크리트만 밟는 사람들은

생명 없는 냄새만 짙게 풍길 뿐이다.

새벽이슬은 여름을 지우고

바람은 가을을 열심히 퍼 나른다.

내가 걸어간 오솔길에도

여름이 지나간 발자국이 찍혀있다.

여름은 꾸물거리며 더디 간다 했더니

가을바람이 찾아와 새벽 창문을 닫는다.

지루했는데 여름이 가니 막상 아쉽다.

202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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