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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산파의 신앙(출1:15-21)
- 『introduction』
- 고사성어 가운데 螳螂拒轍(당랑거철)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 달랑은 사마귀를 뜻하고, 거철은 수레를 막아선다는 뜻입니다.
- 임금이 타고 가는 수레를 사마귀 한 마리가 막아섰습니다.
-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용어입니다.
- 하나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 분수를 모르고 덤비는 행위는 무모함이고, 상대방에 압도당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일은 용기라는 뜻입니다.
- 춘추 시대 초기 제나라(齊)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가던 중에 사마귀 한 마리가 제장공이 타고 있는 수레 앞에 나타나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었습니다.
- 사마귀가 뭔지를 몰랐던 제 장공이 신기하여 수레를 멈추게 하고 좌우 어자(御者:수레를 모는 사람)에게 가로되, “저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라고 하자,
- “저것은 사마귀라 하는 곤충인데, 어떤 것이든 앞에 있으면 저 날카로운 앞발을 들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융통이 없어 제 앞을 가로막기만 할 뿐, 도무지 뒤나 옆으로 움직인 적이 없는 놈입니다.”
- 이에 제장공이 “만일 저것이 사람이라면 응당 무서운 용사일 것이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마귀에게 경의를 표하고 수레를 돌려 지나갔다고 합니다.
-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당랑거철(螳螂拒轍)입니다.
- 무모함과 용기는 백지장 차이입니다.
- 무모함은 어리석은 행동이나 용기는 지혜 있는 행동입니다.
-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모함이 아니라 용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신앙인은 더욱 그래야 합니다.
- 오늘은 두 산파 부아(Puah)와 십브라(Shiphrah)는 당랑거철을 떠오르게 하는 인물입니다.
- 거대한 바로의 세력에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 그들의 손에 의해 모세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 오늘은 두 산파의 깊이 있는 신앙심을 찾아보려 합니다.
- 큰 은혜가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 『change sentence』
- 부아와 십브라 두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출1:21).
-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21).
- 『Text background』
- 출애급기 1장은 공포의 시대였습니다.
- 야곱의 열두 아들의 가족 70명이 애급으로 이주하여 정착한지 4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 네 세대가 지나간 것입니다.
- 히브리민족은 200만만으로 불어났고, 애굽 나라가 견제할 정도로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전쟁이나 폭동, 혹은 애굽 국가의 정책 결정과 왕의 통치에 견제세력이 될 만했습니다.
- 위기감을 느낀 바로는 히브리민족 말살 정책을 폈습니다.
-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고 산파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여아는 죽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 이렇게 하면 자연히 인구감소와 함께 히브리민족이 멸절된다고 바로 임금은 생각했습니다. 바로는 잔인한 임금이었습니다.
-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 애급의 바로(Pharaoh)가 산파를 불러 명령을 거역한 죄에 대해 추궁하였습니다.
- 산파들은 바로에게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 히브리 여성은 애굽 여성보다 더 건장하여 산파가 도착했을 때 이미 해산을 해서 손을 쓸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 하나님이 산파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바로의 유아학살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 히브리 백성은 점점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
- 21절에 보면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들 가정이 흥왕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 히브리민족이 번성한 데는 산파들의 역할이 컸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 『Inspiration message』
- 신파는 오늘날로 말하면 산부인과 의사들입니다.
- 본문의 배경은 지금부터 3,500년의 상황입니다.
- 당시 의료기술은 원시적이었을 것입니다.
- 여기서 중요한 주제는 산파들의 신앙입니다.
-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 그래서 태어난 아기를 일부러 죽이지 않았습니다.
- 그들은 생명존중신앙이 있었고, 생명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경외하였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자국민의 아기를 학살함으로 민족 말살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생명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아이들을 죽이지 않고 왕에게 거짓 보고를 한 것입니다.
- 『Reader show』
- 십브라(Shiphrah)와 부아(Puah) 이 두 사람은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될 만큼 위대한 신앙으로 평가받습니다.
- 여호와(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축자적으로 해석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Fear of God)입니다.
- 이는 왕이나 대통령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 앞에서 느끼는 떨림, 긴장감, 위압감, 경외심, 공손함과 같은 심리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 그래서 어린아이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 왕에게 거짓말을 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을 더 무서워한 것입니다.
- 우리 하나님은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 불의한 일과 악한 일을 묵과하지 않으시며, 자신이 행한 대로 응보 받게 하는 분입니다.
-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였습니다.
-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라”라고 했습니다(시2:11).
- 『Bible connection』
- 성경에 “여호와(하나님)를 경외한다.”는 성구를 160회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 특기할 것은 경외한다는 성구가 두려움이나 떨림과 같은 심리적 상태와 연관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심리적 차원이 아니라 행위적 차원이라는 말입니다.
- 레위기(Leviticus) 서에서 몇 구절 예를 들겠습니다.
- “너는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19:14).
-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19:32).
- “너희 각 사람은 자기 이웃을 속이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25:17).
- “너는 그에게(가난한 형제)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며”(25:36),
- “너는 그를(종으로 팔린 형제)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25:43).
-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단순히 심리적으로 하나님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돌보고 어른은 공경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고, 사회적 약자, 경제적 약자, 신체적 약자를 돌아보고 보살펴주는 행위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실천적 행동이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였고(창22:12),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여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삶을 살았습니다(욥1:1).
- 히브리 두 산파는 하나님을 경외하여 애굽 왕의 불의한 명령을 어기고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들을 살려주었다(출1:21).
- 바사(Persia) 시대 유다의 총독이었던 느헤미야(Nehemiah)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선임 총독들과는 달리 일체의 가렴주구(苛斂誅求,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를 하지 않고 백성을 압제하지 않았습니다(느5:15).
- 『evangelical application』
- 우리는 과연 매일의 삶 속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사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 심리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겸손하며, 공손하고, 겸허하며, 신실해야 합니다.
- 예배와 기도 생활에 경건하고, 교회를 섬김과 우리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성실해야 할 것입니다.
- 이웃을 해치지 말고, 남을 속이지 말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돕고 사랑하며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마25:37-38).
- 이런 삶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입니다.
- 우리 모두 이렇게 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 『change sentence』
- 히브리 남아를 모두 살려준 십브라와 부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으로 복을 받았습니다.
-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두 번째 신앙은 무엇일까요?
- 2. 불의에 맞서는 용기의 사람이었습니다(출1:18-19).
-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18-19).
- 『Bible story』
- 십브라와 부아는 일부러 히브리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 바로 임금이 그들을 불러 추궁할 때 그들은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 실제로 히브리 여인이 애굽 여인보다 건장하며 아기를 잘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의 그런 주장은 거짓말입니다.
- 17절에“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1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산파의 이런 행위는 바로 임금에 대한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저항입니다.
- 불의에 맞서는 행동이며, 바로의 악에 동조하지 않는 결단입니다.
- 어린아이를 죽이는 행위는 살인을 저지르는 악입니다.
-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악입니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 이 세상에 어떤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 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까지 산모는 10개월간 뱃속에서 키웁니다.
- 새 생명의 탄생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부부 사랑의 결실입니다.
- 생육, 번성, 충만함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 한 아기의 탄생은 가정보존의 기능입니다. 하
- 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 갓 태어난 아기는 온 세상이 축복해야 할 귀한 사건입니다.
-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사회적 유산입니다.
- 그토록 숭고하고 귀중한 생명을 자신의 정권야욕을 위해 처단하거나, 소수민족에 대한 박해 행위로서의 살인극은 용납할 수 없는 악입니다.
- 바로 임금은 악의 표상이며, 사단의 하수인인 것입니다.
- 십브라와 부아는 왕의 불의한 명령에 저항했습니다.
- 불의한 정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 이런 태도는 진정한 용기입니다.
- 『Link story』
- 바울 사도가 가이샤라에 있는 총독부에 2년간 구류되어 있었습니다.
- 벨릭스 총독이 일부러 재판을 연기하며 바울에게 보석금을 요구하였습니다.
- 돈을 주면 석방해 주겠다는 의도를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 사도행전 24장 26절에“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26). 라고 하였습니다.
- 바울은 벨릭스 총독의 불의한 제안을 거부하였습니다.
- 벨릭스는 진리에 관심이 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25).
- 돈밖에 모르는 사람(26절)입니다. 원칙과 소신이 없는 사람(27)입니다.
- 바울은 구류된 2년 동안 일체 불의한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 죄가 없었지만 당당하게 감옥을 살았습니다.
- 그것이 그의 용기입니다.
- 『evangelical application』
-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의한 제안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거절해야 합니다.
- 직장 상사가, 직장의 사장이, 혹은 친한 친구가, 혹은 힘 있는 권력자가 불의한 일을 명령하거나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부해야 합니다.
- 불의와 맞서야 합니다.
- 그 일로 내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 불이익을 당할 수 있습니다.
- 그 조직이나 그룹에서 기피 대상이 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 그 조직에서 추방당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많은 사람이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 우리는 왜 불의함을 거부해야 합니까?
- 작은 불의에 타협하게 되면 점점 큰 불의의 압력이 가해집니다.
- 불의한 이익으로 얻은 것은 결국, 나를 파멸시킵니다.
- 불의한 행위를 우리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 그래서 우리는 불의에 동조하거나 설득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 불의한 벨릭스(Felix)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 27절에 보면 이 얘기가 로마 황제에게 들어가서 벨릭스는 본국으로 소환되고 베스도(Festus) 총독이 오게 되었습니다.
- 벨릭스는 수많은 사람에게 뇌물을 받거나 뒷돈을 받고 재판을 해준 일이 탄로 나면서 나중에 로마 황제로부터 극형을 받았으나 겨우 목숨만은 건졌다고 합니다.
- 불의한 일이 처음에는 좋아 보이나 그 끝은 좋지 않습니다.
-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사람은 처음에는 더디고 시시해 보이나 나중이 항상 좋습니다.
- 우리는 십브라와 부아처럼 목숨을 걸고 불의한 세상에 맞설 용기가 없다고 해도 매일의 삶에서 불의를 미워하고, 거짓을 버리며, 악에 물들지 말고, 언제나 의와 진실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공평한 말을 하고, 남을 음해하거나 모해(謀害)하지 말고, 상처 주는 말과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일이 가장 용기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모두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change sentence』
- 두 번째 단락에서 우리는 용기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 두 산파에게 배울 수 있는 신앙은 또 무엇일까요?
- 3.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출1:20).
-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18)라고 하였습니다.
- 『Inspiration message』
- 산파는 의사입니다. 의사의 사명을 생명을 살리는 직업입니다.
- 새 생명의 출생을 돕는 의사입니다.
- 아기와 산모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사람들입니다.
- 의사는 직업이면서 사명자들입니다.
-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선서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 “나는 의학의 신 그리고 건강과 모든 치유, 그리고 여신들의 이름에 걸고 나의 능력과 판단으로 다음을 맹세하노라. 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내가 환자의 이익이라 간주하는 섭생의 법칙을 지킬 것이며, 심신에 해를 주는 어떠한 것들도 멀리하겠노라.
- 나는 요청을 받는다 하더라도 극약을 그 누구에게도 주지 않을것이며 복중 태아를 가진 임신부에게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 물론 십브라와 부아시대에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없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의사의 사명과 역할은 인간의 기본적 본분에 공유되는 약속입니다.
- 그런 사명감에서 두 사람은 아기를 죽이지 않고 살렸던 것입니다.
- 만약 태어나는 아기가 애굽의 아기라도 그들은 죽이지 않고 살렸을 것입니다.
- 좋은 의사는 남녀노유 빈부귀천을 편애하지 않습니다.
- 심지어 적군이라도 죽을병에 걸리거나 전상(戰傷)을 입었다면 고쳐주어야 합니다.
- 이것이 의사의 정신입니다.
- 『Gospel story』
- 기독교의 근본정신은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생명은 천하를 얻는 일보다 더 귀합니다.
-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께서 이 세상이 오신 것은 생명을 구원하고,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10:10).라고 하였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주님은 의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라고 하였습니다.
-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수많은 병자를 고쳐주셨고, 죄에 빠진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 『evangelical application』
- 여기서 기독교는 생명을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알아애 합니다.
- ① 육체적 생명입니다.
- 우리는 모두 육체적 생명, 생물학적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 생명은 첫째, 천명(天命),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합니다.
- 둘째, 일명(一命), 개인에게는 하나밖에 없으므로 귀합니다.
- 생명에는 스페어(Spare)가 없습니다. 예비용 생명이 없다는 뜻입니다.
- 셋째, 사명(使命), 각자 사명이 있으므로 생명은 귀합니다.
- 넷째, 귀명(貴命),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목숨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 다섯째, 의명(義命), 참되고 의로운 목숨입니다.
- 의로운 일을 하며 살아야 하므로 귀합니다.
- 여섯째, 대명(大命), 큰일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귀합니다.
- 일곱째, 숙명(宿命),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나기 때문에 귀합니다.
- 여자와 남자로 태어난 것은 숙명입니다.
- 지금의 부모 아래서 태어난 것과 각자 자기가 사는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는 것은, 숙명이며 운명이라고도 합니다.
- 여기서 명(命)은 목숨을 의미하는데 그 명이 하나님이 주신 목숨임과 동시에 그분의 명령을 받아 이 세상에 왔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 생명은 천시하거나 경시하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가 됩니다.
- ② 영적 생명입니다.
- 영적 생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어 넣어주신 루하흐의 생명입니다.
- 소위 영혼(靈魂)입니다.
- 우리의 영은 아담의 선악과 사건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원한 사망의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대속의 사건을 통해 죽은 영이 복음으로 다시 사는 부활의 은총이 임했습니다.
-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만 하며 죄사함을 받고, 사망에서 생명을 옮겼습니다.
- 저와 여러분은 복음으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느니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라고 하였습니다.
- 부아와 십브라가 이런 원리를 알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생명을 존중했고 귀하게 여겨 어린 남아(男兒)를 모두 살려준 것입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물학적 생명과 함께 우리의 영적 생명, 즉 영혼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 그리고 죄에 빠진 영혼을 끊임없이 구원해야 합니다.
-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 주님의 성육신 사역이었으며, 교회에 그 사명을 분부하셨습니다.
- 우리 모두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 『final conclusion』
- 결론입니다. 십브라와 부아 이 두 사람은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 둘째, 불의와 맞서 싸운 사람입니다.
- 셋째, 생명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 우리 주님이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 그리고 이 두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 본문 21절을 보세요.“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1:21)라고 하였습니다.
- 십브라와 부아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사람들처럼 집안이 흥왕(興旺)하게 됩니다.
- 우리가 모두 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2023,12,17,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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