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겨울 비

신사/박인걸 2023. 1. 17. 22:13
  • 겨울 비
  •  
  • 겨울비는 언제나 을쓰년스럽다.
  • 이런 날에는 고달팠던 기억을 호출한다.
  • 낡은 리어카에 사과를 싣고
  • 동부이촌동 어느 골목길에서
  • 갑자기 쏟아진 겨울비를 맞으며
  • 오돌오돌 떨던 때가 舊正 무렵이었다.
  • 苦學生 신분에 본전을 잃어버릴까 봐
  • 사과 한 개도 금쪽이었다.
  • 변변찮은 입성에 간드레불에 손을 녹이며
  • 밤늦게까지 떨이를 외칠 때면
  • 겨울비는 나의 꿈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 초라한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얼굴들과
  • 동정의 눈빛으로 과일 한봉지를 팔아주던 아저씨,
  • 통행 금지 싸이렌이 울리기 전에
  • 리어카 보관소로 달려야 했던 그시절
  • 항상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렸다.
  • 비나 눈이 내리는 날에는
  • 언제나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지만
  • 잃어버린 本錢은 나의 의지를 키우는 학비였다.
  • 지금도 동부이촌동 철도 건널목에
  • 비에 젖은 열차가 기적을 울리려나.
  • 오늘은 긴 기적 소리가 그립다.
  • 202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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