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곳 풍경

신사/박인걸 2021. 9. 8. 23:15

그곳 풍경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면

나뭇잎 위로 노을 조각이 별처럼 쏟아지고

아직 땅거미가 내려앉기 직전

병풍같이 둘러선 산과 산 사이에는

장엄한 고요가 교향곡처럼 흘렀다.

붉은 수수가 알알이 여물어가고

여문 강낭콩 넝쿨은 장대를 타고 오르고

고개 숙인 벼이삭이 누레진 들판에는

적년신고한 보람이 자욱했다.

내가 몽정소년이 될 즈음에는

영혼이 햇순처럼 순해서

어린 눈 속에 비친 그곳 들판에는

밀레 만종의 종소리가 출렁거렸다.

억수장마를 이겨낸 풀잎들과

작렬하던 태양빛의 시련을

보랏빛 눈물을 쏟으면 피어난 나팔꽃들의

소리 없는 함성이 울려퍼지던

그곳 이맘때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202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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