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아스라한 추억

신사/박인걸 2021. 9. 10. 15:53

아스라한 추억

 

운두령에는 종일 비가 내렸고

미제 스리쿼터는 연실 헉헉거렸다.

낮은 구름은 숲에 연막을 쳤고

바람은 연실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해질녘 짐칸에 실린 나는

흘러내리는 빗물을 쫄딱 맞으며

봉평 어디로 가고 있었다.

지붕도 없이 짐짝처럼 실려

엉덩이에 물집이 잡힐지라도

걸어서 그 령을 넘지 않아 좋았다.

비켜 지나가는 차 한 대 없었고

망태를 맨 심마니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태우는 엔진 소리만

적막에 쌓인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우거진 숲에서 놀란 꿩들이 날고

일렬로 선 나무들만 일제히

여름비에 목욕을 감고 있었다.

내가 지나간 족적은 그 령에 없어도

내 기억 속에 그 길은 길게 누웠다.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지만

살아보니 삶은 매일 버거운 령(嶺)이더라.

202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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