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라한 추억
운두령에는 종일 비가 내렸고
미제 스리쿼터는 연실 헉헉거렸다.
낮은 구름은 숲에 연막을 쳤고
바람은 연실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그 꼬불꼬불한 산길을
해질녘 짐칸에 실린 나는
흘러내리는 빗물을 쫄딱 맞으며
봉평 어디로 가고 있었다.
지붕도 없이 짐짝처럼 실려
엉덩이에 물집이 잡힐지라도
걸어서 그 령을 넘지 않아 좋았다.
비켜 지나가는 차 한 대 없었고
망태를 맨 심마니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태우는 엔진 소리만
적막에 쌓인 산골짜기에 메아리쳤다.
우거진 숲에서 놀란 꿩들이 날고
일렬로 선 나무들만 일제히
여름비에 목욕을 감고 있었다.
내가 지나간 족적은 그 령에 없어도
내 기억 속에 그 길은 길게 누웠다.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이지만
살아보니 삶은 매일 버거운 령(嶺)이더라.
202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