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겨울 눈

신사/박인걸 2021. 8. 27. 10:08

겨울 눈

 

연일 대지를 불덩이로 만드는

삼복더위에 겨울눈을 생각한다.

새하얀 눈이 무질서하게 내려도

아무상관하지 않고 눈을 밟으며 걸으면

손발은 시려도 마음이 아늑해진다.

지저분한 것들을 부지런히 쓸어 덮고

삼림의 산새소리까지 잠재우면

오로지 눈이 점령한 산천은

건곤일색으로 단순한 세상이 된다.

흰 눈이 소리 없이 쌓일 때면

자기를 드러내는 색깔의 개성과

앞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의 경쟁과

온 종일 울어 제키는 곤충들의 공해도 없다.

함부로 피를 빠는 해충들의 아니꼬움과

불쾌지수에 뒤척이는 밤이 없다.

복잡하던 마음은 간단해지고

가라앉았던 기분은 풍선을 타고 오른다.

어미 품에 안긴 어린양처럼

온 세상이 내 품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흰 눈이 더욱 그립다.

20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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