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해 겨울 밤

신사/박인걸 2020. 11. 12.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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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밤

 

거칠게 부는 겨울바람에

뒤뜰에 뻗은 산사나무가지가

귀신소리를 낼 때면 무서웠다.

윗방 낡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면

문풍지는 늙은 목소리로 울고

아이는 두려움에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는 나를

먼 꿈나라로 데려가곤 했다.

그해 겨울 목침을 밴 아버지가

구슬픈 은율로 류충렬전을 읽을 때면

한(恨)이 구슬꿰미 같던 어머니는

옷소매로 연실 눈물을 훔쳤다.

무말랭이를 간식으로 먹었어도

가난이 서러운 줄 몰랐던 아이는

서울에는 초콜릿이 있는 줄 몰랐다.

제풀에 죽은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장작불에 구들장이 달아오르면

낡은 이불로 벗은 발만 덮어도

긴긴 겨울밤은 어머니 품만큼 따스했다.

이제 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나는

아직도 그 해 겨울밤에 갇혀있다.

오늘밤은 별들이 바람에 스친다.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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