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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 밤
거칠게 부는 겨울바람에
뒤뜰에 뻗은 산사나무가지가
귀신소리를 낼 때면 무서웠다.
윗방 낡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면
문풍지는 늙은 목소리로 울고
아이는 두려움에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는 나를
먼 꿈나라로 데려가곤 했다.
그해 겨울 목침을 밴 아버지가
구슬픈 은율로 류충렬전을 읽을 때면
한(恨)이 구슬꿰미 같던 어머니는
옷소매로 연실 눈물을 훔쳤다.
무말랭이를 간식으로 먹었어도
가난이 서러운 줄 몰랐던 아이는
서울에는 초콜릿이 있는 줄 몰랐다.
제풀에 죽은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장작불에 구들장이 달아오르면
낡은 이불로 벗은 발만 덮어도
긴긴 겨울밤은 어머니 품만큼 따스했다.
이제 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나는
아직도 그 해 겨울밤에 갇혀있다.
오늘밤은 별들이 바람에 스친다.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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