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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산
산은 조용히 일어서 있고
옷 벗은 나무들 홀가분하다.
어저께까지 황홀하게 빛났으니
이별 앞에 슬퍼할 수는 없다.
바람마저 멀리 도망친 숲에는
너부러진 낙엽들이 눈부셔서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
어차피 그 날이 오면
나는 혼자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에 꽃은 처연(悽然)한 그림자만 남기고
붉은 단풍은 종소리처럼 흩어지며
나는 외로운 눈물을 흘릴 걸 짐작했다.
가을 산이 공림(空林)으로 변할 때면
나는 아랫배에 살며시 힘을 주고
두 주먹 사이에 몽사(蒙死)를 각오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새파랗던 시절의 달아오르던 사랑도
녹슨 나뭇잎처럼 사라지고
둘둘 말려 떠나가는 저녁노을에
그리움마저 휩쓸려 높은 산등성을 넘는다.
어둠이 구릉지로 걸어올 때
처음 느끼는 쓸쓸함이 출렁거린다.
올 해 늦가을 산은 더 높아 보인다.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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