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늦가을 산

신사/박인걸 2020. 11. 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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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산

 

산은 조용히 일어서 있고

옷 벗은 나무들 홀가분하다.

어저께까지 황홀하게 빛났으니

이별 앞에 슬퍼할 수는 없다.

바람마저 멀리 도망친 숲에는

너부러진 낙엽들이 눈부셔서

나는 네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하나도 쓸쓸하지 않다.

어차피 그 날이 오면

나는 혼자 걷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에 꽃은 처연(悽然)한 그림자만 남기고

붉은 단풍은 종소리처럼 흩어지며

나는 외로운 눈물을 흘릴 걸 짐작했다.

가을 산이 공림(空林)으로 변할 때면

나는 아랫배에 살며시 힘을 주고

두 주먹 사이에 몽사(蒙死)를 각오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왔다.

새파랗던 시절의 달아오르던 사랑도

녹슨 나뭇잎처럼 사라지고

둘둘 말려 떠나가는 저녁노을에

그리움마저 휩쓸려 높은 산등성을 넘는다.

어둠이 구릉지로 걸어올 때

처음 느끼는 쓸쓸함이 출렁거린다.

올 해 늦가을 산은 더 높아 보인다.

20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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