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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6

꽃꽂이 꽃

꽃꽂이 목이 잘린 꽃이여 곧 시들어버릴 운명이며 이미 끝난 목숨이여 다시 살아 날 수 없는 사체여 하늘거리며 피어날 적에 세상이 밝게 빛났고 그윽한 향기에 취해 벌 나비도 비틀거렸다. 무리지어 핀 꽃밭에서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고 그 곱고 산뜻한 색깔은 어두운 밤도 대낮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난걸 뭐 뿌리 없는 생명이며 씨앗 없는 빈껍데기에 가련하고 슬픈 이야기일 뿐 내일이면 버려지고 모레가 오면 짓밟히리. 꽃으로 태어난 다는 것은 처음부터 위태로운 곡예였다. 2021.1.31

나의 창작시 2021.01.31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들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고 눈에 발은 묻은 남방에서 온 가로수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오돌 오돌 떨고 서있다. 스웨터 하나 걸치지 못한 작은 가슴은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오로지 희생을 강요당한 삶을 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드렸던 어머니 무덤가에는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이 잠들었다. 가끔은 고운 눈가에 서린 붉은 눈물과 차마 말 못했던 가슴의 아픔을 아직 철부지였던 나는 그냥 지나쳤고 어머니 가슴에는 굵은 고드름만 매달렸다. 시간은 사물을 제자리에 가두지 않고 먼저 간 사람의 걸어간 삶의 자리에 뒤에 오는 사람을 그대로 세운다. 생강나무 꽃이 피기 전에 겪으셨던 어머니의 아픈 발자취를 내가 밟을 때 말없이 흘리시던 눈물의 깊은 교훈과 입술을 깨물며 견디셨..

나의 창작시 2021.01.30

느티나무

느티나무 수주로를 처음 걷던 날 도열하여 거수경례로 나를 맞이하는 느티나무에 별 네 개 단 어느 장성도 부럽지 않았다. 연록색 이파리들이 5월 하늘에 나부끼고 이팝나무 꽃내음 곁에서 소용돌이칠 때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흔들리는 마음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이 길은 내가 주야장천 걸었고 나무는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목이 된 밑동에는 이끼가 끼고 두 팔로 끌어안으려 할 때 나를 거부해도 한 영역을 다스는 영주 같아 내 가슴 한 구석에는 보람이 가득 고였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우듬지는 내게서 멀고 하늘과 맞닿은 가지 끝은 범접할 수 없는 상류 세상이지만 나 또한 나대로 구축한 세상이 있기에 막역한 동지 같은 느낌에 흐뭇하다. 한 겨울은 푸른 옷을 벗기고 삭풍은 사정없이 끝가지를 괴롭혀도 오히..

나의 창작시 2021.01.29

인생살이

인생살이 섣달의 마른 바람은 도시 골목을 사납게 휘젓고 앙상한 가로수는 추위에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린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은 높나직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렀고 이런 겨울에도 바람한 점 없어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고요했다. 아득한 어느 경점에서부터 나는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사막보다 더 두려운 길을 걸어야했다. 내가 내 이름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려 애썼지만 모진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겨울에 나는 내 몸을 가누지 못했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아주지 않아 총에 맞은 병사처럼 스러지려 할 때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맨 손으로 땅을 짚으며 일어서야 했다. 내 기억 속에 인생살이는 아름다운 추억들도 적지 않지만 혹독한 징수에 시달린 소작인처럼..

나의 창작시 2021.01.28

서울로 가는 버스

서울로 가는 버스 버스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비포장도로는 차를 심하게 흔들었고 폭탄연기처럼 일어나는 먼지에 노변 풀잎은 진저리쳤다. 창밖을 바라보던 승객들은 졸고 더러는 엉덩방아에 신음하지만 잡힐 듯 다가오는 서울 하늘에 내 가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감춰 놓았던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옆 승객에게 털어 놓을 수 없었지만 버스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만큼 내 마음도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낯설지만 그 낯설음은 새 세상으로 다가오고 호기심 가득 찬 내 눈빛은 미지의 세상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눈부시게 차창에 부딪쳤고 이내 내 가슴 언저리를 휘돌아 어떤 설렘으로 심장을 마구 흔들었다. 직행 버스는 망우리를 넘었고 이 ..

나의 창작시 2021.01.27

기억의 피난처

기억의 피난처 여기쯤에서 뒤를 돌아다보니 굽이굽이에 가려진 세월의 끝은 기억의 휴지통에 팽개치고 호주머니 속에 숨겨 놓았던 추억들만 가끔 꺼내어 들여다보면 행복하다. 한 사람의 짧은 역사이지만 내 중세에 저장된 기억보다는 초기의 발자국들이 더 아름답다. 부딪쳤던 일들은 상처가 되고 빼앗겼던 것들은 고통이 되었다. 이루지 못한 아픔들은 눈물이 되어 깨지지 않은 병에 채워졌지만 꺼리길 것도 꾸밈도 없던 시절 흙냄새 진동하던 언덕을 밟던 때는 푸른 하늘보다 더 맑은 영혼이었다. 지천으로 널려 피던 꽃송이들은 내 얼굴을 비비며 뒹굴던 동무들이었고 유리 빛 냇물은 마음을 씻어주는 내 넋의 맑은 성수(聖水)였다. 흙냄새와 솔향기에 절어 붙어 내 혼은 동심의 포로가 되었어도 현실의 치열한 전장에서 피할 수 있는 정신..

나의 창작시 2021.01.25

정든 땅

정든 땅 처음 이 땅을 딛던 날엔 비가 내렸고 진창길 짓밟을 때 질퍽거려도 움푹 파인 발자국마다 꿈을 채우며 마을 복판에 붉은 등불을 달았다. 띄엄띄엄 새 나오는 마을 불빛과 밤이면 맹꽁이 울어대는 낯선 지대는 정붙이며 살아갈 영토는 아니었어도 세워놓은 말뚝에 내 의지를 매달았다. 낯선 사람들만 오가는 거리에서 오로지 하늘에 내 소망을 걸어두고 구둣발 밑창이 닳도록 걸으며 화전 밭 일구듯 맨 땅을 파냈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서른다섯 해 내 일기책 절반이 이 동네 이야기다. 고향 땅에 묻은 시간들과 어느 객지에 걸어 놓았던 날들보다 여기서 살아 온 세월이 가장 길어 꿈엔들 잊힐 리 없는 숫한 사연들이여 나 이제 여기를 떠나도 내 마음은 저 언덕위에 걸어두리라. 또 다시 낯선 땅을 밟고 살아도 정든 이 ..

나의 창작시 2021.01.20

눈 오던 날

눈 오던 날 흰 눈이 펄펄 오던 날 5층 베란다에서 바라본 세상은 별천지다. 눈길이 닿는 구석구석마다 하얗게 덮을 때 내 마음이 포근하다. 아파트 정원의 노송 잎과 이파리 하나 없는 마로니에 가지에도 풀로 붙인 듯 곱게 달라붙어 유년 적 각인된 풍경을 재현한다. 이런 날의 감정은 누구나 다를 테지만 내 의식 속에 갇힌 세상은 황홀경에 빠졌던 종교경지를 넘어 꿈속에 천상을 걷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기온이 빙점 이하로 떨어지던 날 내 가슴은 허허벌판을 달리고 아직 씻어내지 못한 자아의 찌꺼기들이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렸었다. 며칠만 더 시간이 흘렀더라면 엉킨 감정을 풀어낼 수 없었을 텐데 졸업식에 받는 꽃다발처럼 설백(雪白)은 내 마음을 솜 이불위에 눕힌다. 2021.1.18

나의 창작시 2021.01.18

겨울 새

겨울 새 겨울 새 한 마리 가엽다. 눈 쌓인 산속을 온종일 헤맸으나 한 톨 식량을 찾지 못해 날개를 접고 썩은 삭정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내가 땀 흘리며 노동에 절었을 때 너는 온 종일 낭만의 노래만 불렀고 내가 가파른 산길 숨을 몰아쉬며 오르던 날 너는 날개 짓 몇 번에 산을 넘었다. 활공하는 자유를 난 부러워했고 축지법보다 더 신통한 기술에 꿈속에서라도 산을 건너뛰고 싶었다. 하지만 난 너를 동경하지는 않았다. 노동 없이 사는 자유는 속박이며 땀 흘리지 않고 산 결과는 궁핍이다. 공중 나는 새도 조물주가 먹인다기에 굶어 죽는 새는 없는 줄 알았다.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었다. 게으른 새와 계절을 잃어버린 새는 폭설 혹한에 방향을 잃었고 예리한 눈과 날카로운 발톱도 비축 하나 없이 살아온 발자국에는 씁..

나의 창작시 2021.01.17

고통의 깊이

고통의 깊이 한파가 휘몰아쳤다. 산은 뿌리까지 얼어 내리고 한강은 추위에 옥조여 밤새 울었다. 밤하늘 별들이 하얗게 얼어붙을 때 나의 가슴에도 빙하 녹은 물이 고였다. 살아오면서 생긴 상처의 웅덩이에 쓴 즙이 가득가득 쌓일 때면 토해낼 수 없는 깊은 고통들이 석회동굴 석순처럼 일어선다. 또 한 번의 한파가 파도처럼 달려들고 거칠 것 없는 삭풍(朔風)은 경계선 없이 뇌파를 공격할 때면 고통의 중량을 이겨내지 못해 죽은 고목처럼 쓰러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 가슴에는 언제나 화덕이 있다. 오래전에 만든 아궁이에 꺼지지 않는 불덩이가 불끈불끈 치솟는다. 또 한 번의 혹한(酷寒)이 맹타한대도 나는 섬뜩함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의 깊이가 바닥에 다다를수록 그 고통을 이기는 힘은 하늘을 뚫는다. 2021.1.16

나의 창작시 2021.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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