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느티나무

신사/박인걸 2021. 1. 29.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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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수주로를 처음 걷던 날

도열하여 거수경례로 나를 맞이하는 느티나무에

별 네 개 단 어느 장성도 부럽지 않았다.

연록색 이파리들이 5월 하늘에 나부끼고

이팝나무 꽃내음 곁에서 소용돌이칠 때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흔들리는 마음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이 길은 내가 주야장천 걸었고

나무는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목이 된 밑동에는 이끼가 끼고

두 팔로 끌어안으려 할 때 나를 거부해도

한 영역을 다스는 영주 같아

내 가슴 한 구석에는 보람이 가득 고였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우듬지는 내게서 멀고

하늘과 맞닿은 가지 끝은

범접할 수 없는 상류 세상이지만

나 또한 나대로 구축한 세상이 있기에

막역한 동지 같은 느낌에 흐뭇하다.

한 겨울은 푸른 옷을 벗기고

삭풍은 사정없이 끝가지를 괴롭혀도

오히려 늠름한 모습에 나는 감동한다.

내가 꿈꾸었던 내 모습을

황금비율로 서 있는 느티나무에서 찾아서다.

20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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