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정든 땅

신사/박인걸 2021. 1. 2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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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땅

 

처음 이 땅을 딛던 날엔 비가 내렸고

진창길 짓밟을 때 질퍽거려도

움푹 파인 발자국마다 꿈을 채우며

마을 복판에 붉은 등불을 달았다.

띄엄띄엄 새 나오는 마을 불빛과

밤이면 맹꽁이 울어대는 낯선 지대는

정붙이며 살아갈 영토는 아니었어도

세워놓은 말뚝에 내 의지를 매달았다.

낯선 사람들만 오가는 거리에서

오로지 하늘에 내 소망을 걸어두고

구둣발 밑창이 닳도록 걸으며

화전 밭 일구듯 맨 땅을 파냈다.

한 해 두 해 그렇게 서른다섯 해

내 일기책 절반이 이 동네 이야기다.

고향 땅에 묻은 시간들과

어느 객지에 걸어 놓았던 날들보다

여기서 살아 온 세월이 가장 길어

꿈엔들 잊힐 리 없는 숫한 사연들이여

나 이제 여기를 떠나도

내 마음은 저 언덕위에 걸어두리라.

또 다시 낯선 땅을 밟고 살아도

정든 이 동네를 가슴에 담아두리라.

골목길, 사거리, 내가 수시로 드나들던

은행, 약국, 병원, 그리고 시장길

길거리서 만나던 낯익은 얼굴들

매일 머리에 이고 살던 저 푸른 하늘과

밤마다 어둠을 밝히던 붉은 십자가

내 영혼의 절반을 놔두고 가리라.

20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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