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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1

그 날

그 날 내가 기다리는 그날이 아직은 땅 밑에서 잠자고 있다. 그늘은 고로쇠나무 곁에 길게 누웠고 바람소리는 검불을 밟고 지나간다. 태양 볕은 두 걸음정도 모자라 깊은 응달 밖에서 서성인다. 산 까치들 어지럽게 울며 날고 멧새들 날개 무게에 주저앉았다. 그 날이 오려면 아직은 기다려야 하고 꽃을 보려면 입술을 깨물어야 한다. 나는 참 많이 찾아 헤매며 그 날 맞을 준비를 예비시켰다. 숲이 기대감을 접고 곯아 떨어져도 나는 귀퉁이에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내가 기다리는 그 날은 멀리 있고 작은 나비는 날개를 높이 걸어 두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곡괭이를 들고 거친 땅을 파낸다. 그날은 봄 비에 실려 내 앞에 설 것이다. 2020.12.25

나의 창작시 2020.12.25

어두운 크리스마스

어두운 크리스마스 겨울바람은 가난한 마음을 시리게 하고 독이 섞인 비말은 칼춤을 춘다.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화살촉에 도시는 온통 신경이 곤두섰다. 가게는 줄줄이 셔터를 어둡게 내리고 성탄 트리는 허무하게 반짝이며 예배당 종탑은 여전히 빨갛게 빛나지만 캐럴송은 악마가 집어삼켰다. 동심은 산타를 애타게 기다리는데 루돌프는 로바니애미로 되돌아갔단다. 방역소독 냄새 지독한 거리에는 차가운 고드름만 불빛에 어리 운다. 징글벨소리가 발걸음에 리듬을 주고 거룩한 노래가 은은히 물결을 타면 촌스런 카드 한 장에 감격하여 작은 선물을 건네주던 풍경이 그립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추억의 크리스마스이브를 꺼내본다. 개척교회 아이들이 성탄절 날 목이 터지게 부르던 성탄노래가 들린다. 그 아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나의 창작시 2020.12.24

잊으려네.

잊으려네. 꼭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다.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이라면 붙잡는다고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다. 일어선 네 눈동자에서 이별을 직감했고 몇 마디 차가운 입술에서 너의 비틀거리는 마음을 읽었다. 우리는 섞이지 말았더라면 차라리 달과 별의 거리만큼 멀었더라면 나의 기억에서 거품처럼 사라질 텐데 뽑아버리기 힘든 가시 같아 날카로운 바늘이 심장과 간 사이를 찌른다. 뒤섞인 위조지폐와 같아 아직은 진위를 가려내기 난해하지만 나는 아직 나에 대하여 고해소 앞을 서성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추억보다는 기억해야 할 날들이 밤하늘에 떠 있는 별같이 많다. 두꺼운 지우개를 두 손에 쥐었지만 지워야할 기억들이 돌 판에 깊이 새겨져 풍화현상에 의지할 시간만큼 큰 바람과 큰 비가 ..

나의 창작시 2020.12.22

봄은 온다

봄은 온다. 눈 내린 강토는 햇빛도 얼어붙고 바람 부는 강가에는 갈대만 울고 있다. 추위에 잠긴 도시는 어둡고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표정은 비장하다. 도시의 창들은 꽁꽁 닫히고 광장에서 들려오던 소리는 도망쳤다. 움츠린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며 어떤 비밀을 하나같이 감추고 도망친다. 새 봄의 꿈은 아스팔트 위에서 부서지고 종달새의 노래는 콘크리트에 묻혔다. 가느다란 희망은 얼음장 아래로 숨고 활개 치던 자유는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계절을 잃어버린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길을 걷는다. 목련이 피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언 강물이 다시 흐르던 날을 회상한다. 겨울은 흐르는 시간을 가둘 수 없고 다가오는 계절을 밀어낼 수 없다. 바다 끝에서 출발한 따스한 바람이 햇살을 부추겨 북상하는 중이다. 동토(凍土..

나의 창작시 2020.12.20

겨울벌판

겨울벌판 흙바람 부는 벌판에는 여름날의 잔상(殘像)만 서려있고 높이 날던 들새들의 노래는 하얀 눈밭에 묻혔다. 여름 빛 반뜩이던 풀밭에는 대지의 기운이 분수처럼 솟았고 출렁이던 이삭들의 율동은 가난한 새들을 불러모았다. 들안개 자욱하던 어느 날 깊은 고독에 잠긴 한 남자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해몽하여 들꽃 향기 속에 취해 비틀거렸다. 이제, 늙은 허수아비마저 사라진 흰 눈 함부로 차지한 벌판에는 인정 없는 바람만 사납게 휘저으며 외로운 수양버들나무를 괴롭힌다. 2020.12.18

나의 창작시 2020.12.18

한 그루 나무

한 그루 나무 여기 상수리나무 한 그루 우람하다. 로켓마냥 위로 뻗은 몸통이 별까지 닿으려는지 고색이 창연하다. 풍상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한 겨울에도 위용은 충천하다 거목의 꿈을 별 위에 걸고 비탈진 언덕에 땀을 쏟으며 탄탄한 영역을 구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견디었을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무릅쓰고 비바람 눈보라 이겨내며 고독이 밀려드는 밤이면 잉잉 울고 침체와 좌절을 안으로 삭였으리라. 불안과 초조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낙망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켰으리라. 수수갈래 뻗는 가지가 숲을 이루니 깃든 새들의 노래가 메아리친다. 지나가는 이들마다 고개를 제키고 거목의 위용을 칭찬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햇살이 곱다. 2020.12.17

나의 창작시 2020.12.17

방랑자의 노래

방랑자의 노래 차가운 벌판에 나 홀로 서서 길 잃은 고라니처럼 먼 산을 본다. 산천을 헤집고 허우적대며 말월(末月)을 걷자니 숨이 차오른다. 눈보라 삭풍에 섞이어 휘날리고 잔인한 추위는 살을 에는데 가슴 텅 빈 초로 나그네는 무량의 감개라곤 하나도 없다. 철새 떼 방향 잃어 끼룩거리고 방초(芳草)동산은 검불이 되니 옷 솔기 파고드는 썰렁한 냉기에 삶의 무거움이 쇳덩이 같다. 삶은 언제나 들새마냥 고달프고 가슴에 의지는 조령모개이다. 오늘은 내 마음 크게 어두우나 아침이 오며는 딴 세상이 되리라. 2020.12.15

나의 창작시 2020.12.15

첫 눈 내리던 날

첫 눈 내리던 날 코로나 19에 시달린 가슴은 가을 단풍도 위로해주지 못했습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을 때 스러진 영혼들의 아우성을 들었습니다. 겨울 가뭄이 된 먼지를 일으키던 날 늦은 첫 눈을 노골적으로 원망했습니다. 팅 빈 들판에는 바람이 쏜살같이 달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잉잉 울었습니다. 미세먼지는 연막처럼 피어오르고 천식에 걸린 노인은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나는 눈을 첫눈에 반한 소녀만큼 기다렸고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오늘 첫눈이 살미역처럼 하늘거리며 아무데나 소담스럽게 덮었습니다. 첫 사랑 소녀에게 영상통화로 벚 꽃잎 같은 눈꽃을 보내주고 싶습니다. 혈관으로 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리고 심장은 가는 손끝에서 뛰고 있습니다. 눈 쌓인 저 들판 위를 내달아 소녀 사는 마..

나의 창작시 2020.12.14

겨울 풍경(風景)

겨울 풍경(風景) 산은 줄줄이 일어서서 흘러가는 구름을 산허리로 끌어 내리고 태양은 산등성을 타고 오르느라 아침마다 지각생이 된다. 길을 찾아 헤매던 바람은 숲에서 잠들고 젖줄이 된 냇물은 얼음장에 갇힌다. 듬성듬성 둘러앉은 마을은 포근한 연기를 매일 피워 올리고 은은히 퍼지는 술 익는 냄새에 산촌 마을은 곱게 취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첫눈이 길을 지우고 굵게 얽힌 눈꽃송이들이 열 폭 병풍보다 더 멋지게 펼쳐진다. 모래톱을 갉아먹던 바람은 흙먼지를 쓸어 담아 령(嶺)너머로 가고 강변에 모여앉아 울던 갈대들도 눈에 파묻혀 스산한 소리를 접는다. 겨울로 치닫는 돌담 모퉁이에서 꽃잎과 단풍잎들의 기억을 지웠다. 눈길을 걷는 한 겨울 운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나를 세웠다. 아주 오래 된 겨울 풍경이 오늘은 영..

나의 창작시 2020.12.13

어머니의 넋

어머니의 넋 황토에 뉘어 백골이 되었을 오래전 영면한 내 어머니시여 이제는 그 설음 모두 잊으시고 웅크린 관절마디 곱게 펴셨던가요. 시리다 못해 얼어붙었던 작은 가슴 화롯불에 맘껏 녹여보지 못해 눈물 삼키며 서럽게 울며 걷던 어머니 파랗게 멍든 가슴 달래 주려나 보랏빛 산도라지 꽃 무덤가에 곱다. 낡은 옷자락 바람에 출렁이며 황톳길 무거운 다리 끌며 걸을 때 저녁녘 축 쳐진 가녀린 양 어깨에 납덩이보다 무겁게 짓누르던 삶의 무게 철부지는 그냥 바라만 볼뿐이었다. 바람은 항상 울타리 안에서 불었고 한숨은 부뚜막위에서 맴돌았다. 딸린 식솔을 굶기지 않으려 맨발로 가시밭길을 망설이지 않으시던 쇠줄로 의지를 허리에 묶고 목숨을 지푸라기로 붙잡아 매고 익모초 생즙보다 더 쓴 침을 날마다 목구멍으로 삼키실 때면 담..

나의 창작시 20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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