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생강나무 꽃

신사/박인걸 2021. 1. 30.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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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나무 꽃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들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고

눈에 발은 묻은 남방에서 온 가로수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오돌 오돌 떨고 서있다.

스웨터 하나 걸치지 못한 작은 가슴은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오로지 희생을 강요당한 삶을 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드렸던 어머니 무덤가에는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이 잠들었다.

가끔은 고운 눈가에 서린 붉은 눈물과

차마 말 못했던 가슴의 아픔을

아직 철부지였던 나는 그냥 지나쳤고

어머니 가슴에는 굵은 고드름만 매달렸다.

시간은 사물을 제자리에 가두지 않고

먼저 간 사람의 걸어간 삶의 자리에

뒤에 오는 사람을 그대로 세운다.

생강나무 꽃이 피기 전에 겪으셨던

어머니의 아픈 발자취를 내가 밟을 때

말없이 흘리시던 눈물의 깊은 교훈과

입술을 깨물며 견디셨던 고뇌를

암벽에 새긴 선명한 글자처럼 내가 읽는다.

아직 겨울이 끝나려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하고

잠자는 생강나무 꽃을 피우려면

내 눈물을 어머니의 유리병에 담아야 한다.

응달에 쌓인 눈 더미 속에서

봄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은 차가운 대지에 불을 피우고 있다.

20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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