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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작시 1400

죽음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모두가 두려워하는 코로나는 며칠 째 몇 백 단위에서 출렁이고 귀한 목숨들이 오늘도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다. 짚단처럼 스러지는 생명들이 어느 화장터로 실려 가는지 조차 우린 모른다. 익명의 사망자로 처리될 뿐 넋을 위로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이틀 만에 코로나에 목숨을 잃었고 세 시간 만에 검은 흙이 되어 어느 매장지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 사람의 점잔은 혼은 아직도 나의 의식 속에 머물러 있고 즐겨 찾던 유투브 영상에서 활짝 웃으며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데 순식간에 그의 목숨을 앗아간 중국산 온역을 나는 저주한다. 죽음은 내가 어려서부터 두려워하던 적이며 무(無)로 돌아가야 하는 과정이다. 예리한 칼날을 숨기고 뒤로 다가와서 소리 없이 생명을 도..

나의 창작시 2021.02.05

디딜방아소리

디딜방아소리 시간은 섣달그믐을 향해 달리고 계절은 입춘의 문지방을 밟고 섰지만 지난 밤 쏟아진 함박눈은 겨울을 틀어쥐고 완강하게 버틴다. 전두엽 어딘가에 처박힌 옛 기억을 정리 안 된 창고처럼 샅샅이 뒤진 끝에 한쪽 구석에 잠자고 있는 설밑 풍경을 간신히 기억의 손으로 집어 올렸다. 하늘은 산과 산이 떠받치고 앞강은 수많은 전설을 노래하며 흘러가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초가집들이 저녁연기를 일제히 질서 없이 내뿜을 때면 사나운 바람도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어린 양보다 더 순해졌다. 한겨울 추위가 제아무리 사나워도 순순한 마을 인심 앞에 봄눈처럼 주저앉고 줄기차게 쏟아지던 함박눈도 양지마을 입구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거기와 여기의 시간차는 균시차이지만 내 의식 속에 갇힌 시간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시계..

나의 창작시 2021.02.04

광야(廣野)

광야(廣野) 끝없이 펼쳐진 아득한 들판뿐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광야이다. 어떤 민족이 사십년간 걸어갔다는 그 광야를 나는 칠십년 째 걷고 있지만 끝이 없다. 내가 자원한 길이 아니었고 누가 나에게 오라고 한 길도 아니었다. 내가 나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광야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람은 굶은 늑대처럼 표호하고 황사 먼지는 검은 굴뚝처럼 토해냈다. 고독은 여름 빗물처럼 스며들고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일용할 양식은 만나처럼 내리지 않았고 반석을 갈라 물을 낼 수도 없었다. 핍절한 여망은 자주 배반을 당했고 지저분한 배신이 종잇조각처럼 뒹군다. 탈주할 퇴로는 처음부터 막혔고 굴레 씌운 당나귀마냥 외길을 가야한다. 밤에는 아침을 기다렸고 아침에는 저녁이 오기를 고대한다. 드넓은 광야..

나의 창작시 2021.02.03

스타킹

스타킹 의상도 아니고 양말도 아니고 살결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도 아니고 촘촘히 엮은 그물 같은데 입는 것도 아니고 신은 것도 아닌 스커트 걸친 여인의 속살에만 달라붙는 그 이름 하루살이 양말이라 했던가. 벗어 놓으면 뱀허물이 되고 다시 걸치면 맨살로 둔갑하는 이상야릇한 얇은 그물이여! 늘씬한 각선미로 뭇 남성을 홀리는 패션이상의 감각으로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꽃으로 눈요기 이상의 행복을 선사하는 나일론 홀 껍데기여! 2021,2,1

나의 창작시 2021.02.01

꽃꽂이 꽃

꽃꽂이 목이 잘린 꽃이여 곧 시들어버릴 운명이며 이미 끝난 목숨이여 다시 살아 날 수 없는 사체여 하늘거리며 피어날 적에 세상이 밝게 빛났고 그윽한 향기에 취해 벌 나비도 비틀거렸다. 무리지어 핀 꽃밭에서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고 그 곱고 산뜻한 색깔은 어두운 밤도 대낮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난걸 뭐 뿌리 없는 생명이며 씨앗 없는 빈껍데기에 가련하고 슬픈 이야기일 뿐 내일이면 버려지고 모레가 오면 짓밟히리. 꽃으로 태어난 다는 것은 처음부터 위태로운 곡예였다. 2021.1.31

나의 창작시 2021.01.31

생강나무 꽃

생강나무 꽃 바람 한 점 없는 겨울 들판에는 어제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고 눈에 발은 묻은 남방에서 온 가로수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오돌 오돌 떨고 서있다. 스웨터 하나 걸치지 못한 작은 가슴은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오로지 희생을 강요당한 삶을 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드렸던 어머니 무덤가에는 생강나무 노란 꽃망울이 잠들었다. 가끔은 고운 눈가에 서린 붉은 눈물과 차마 말 못했던 가슴의 아픔을 아직 철부지였던 나는 그냥 지나쳤고 어머니 가슴에는 굵은 고드름만 매달렸다. 시간은 사물을 제자리에 가두지 않고 먼저 간 사람의 걸어간 삶의 자리에 뒤에 오는 사람을 그대로 세운다. 생강나무 꽃이 피기 전에 겪으셨던 어머니의 아픈 발자취를 내가 밟을 때 말없이 흘리시던 눈물의 깊은 교훈과 입술을 깨물며 견디셨..

나의 창작시 2021.01.30

느티나무

느티나무 수주로를 처음 걷던 날 도열하여 거수경례로 나를 맞이하는 느티나무에 별 네 개 단 어느 장성도 부럽지 않았다. 연록색 이파리들이 5월 하늘에 나부끼고 이팝나무 꽃내음 곁에서 소용돌이칠 때 나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흔들리는 마음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이 길은 내가 주야장천 걸었고 나무는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거목이 된 밑동에는 이끼가 끼고 두 팔로 끌어안으려 할 때 나를 거부해도 한 영역을 다스는 영주 같아 내 가슴 한 구석에는 보람이 가득 고였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우듬지는 내게서 멀고 하늘과 맞닿은 가지 끝은 범접할 수 없는 상류 세상이지만 나 또한 나대로 구축한 세상이 있기에 막역한 동지 같은 느낌에 흐뭇하다. 한 겨울은 푸른 옷을 벗기고 삭풍은 사정없이 끝가지를 괴롭혀도 오히..

나의 창작시 2021.01.29

인생살이

인생살이 섣달의 마른 바람은 도시 골목을 사납게 휘젓고 앙상한 가로수는 추위에 지쳐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린다.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은 높나직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렀고 이런 겨울에도 바람한 점 없어 강보에 싸인 아기처럼 고요했다. 아득한 어느 경점에서부터 나는 시린 바람을 온몸으로 밀어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사막보다 더 두려운 길을 걸어야했다. 내가 내 이름을 지키며 흔들리지 않는 발자국을 남기려 애썼지만 모진 바람이 휘몰아치던 어느 겨울에 나는 내 몸을 가누지 못했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아주지 않아 총에 맞은 병사처럼 스러지려 할 때도 헝클어진 머리칼을 곤두세우고 맨 손으로 땅을 짚으며 일어서야 했다. 내 기억 속에 인생살이는 아름다운 추억들도 적지 않지만 혹독한 징수에 시달린 소작인처럼..

나의 창작시 2021.01.28

서울로 가는 버스

서울로 가는 버스 버스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비포장도로는 차를 심하게 흔들었고 폭탄연기처럼 일어나는 먼지에 노변 풀잎은 진저리쳤다. 창밖을 바라보던 승객들은 졸고 더러는 엉덩방아에 신음하지만 잡힐 듯 다가오는 서울 하늘에 내 가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감춰 놓았던 내면의 깊은 이야기들을 옆 승객에게 털어 놓을 수 없었지만 버스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만큼 내 마음도 달아오르고 있었다. 처음 가는 길은 언제나 낯설지만 그 낯설음은 새 세상으로 다가오고 호기심 가득 찬 내 눈빛은 미지의 세상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은 눈부시게 차창에 부딪쳤고 이내 내 가슴 언저리를 휘돌아 어떤 설렘으로 심장을 마구 흔들었다. 직행 버스는 망우리를 넘었고 이 ..

나의 창작시 2021.01.27

기억의 피난처

기억의 피난처 여기쯤에서 뒤를 돌아다보니 굽이굽이에 가려진 세월의 끝은 기억의 휴지통에 팽개치고 호주머니 속에 숨겨 놓았던 추억들만 가끔 꺼내어 들여다보면 행복하다. 한 사람의 짧은 역사이지만 내 중세에 저장된 기억보다는 초기의 발자국들이 더 아름답다. 부딪쳤던 일들은 상처가 되고 빼앗겼던 것들은 고통이 되었다. 이루지 못한 아픔들은 눈물이 되어 깨지지 않은 병에 채워졌지만 꺼리길 것도 꾸밈도 없던 시절 흙냄새 진동하던 언덕을 밟던 때는 푸른 하늘보다 더 맑은 영혼이었다. 지천으로 널려 피던 꽃송이들은 내 얼굴을 비비며 뒹굴던 동무들이었고 유리 빛 냇물은 마음을 씻어주는 내 넋의 맑은 성수(聖水)였다. 흙냄새와 솔향기에 절어 붙어 내 혼은 동심의 포로가 되었어도 현실의 치열한 전장에서 피할 수 있는 정신..

나의 창작시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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