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시간에 대한 불평

신사/박인걸 2022. 9. 4. 03:26
  • 시간에 대한 불평
  •  
  • 구름에 비는 잔뜩 서려 있고
  • 바람은 무거운 구름을 숙명처럼 밀고 간다.
  • 꽃가루처럼 나부끼던 어제의 햇살은
  • 구름에 몸을 담근 채 잠들었고
  • 태양이 사라진 땅에는 그림자도 도망쳤다.
  • 어제보다 훨씬 낮아진 하늘은
  • 작은 멧부리에 연실 부서져 조각나고
  • 더는 피울 꽃 없는 베롱나무는
  • 허무한 표정으로 아래를 굽어본다.
  • 작년 이맘때 느꼈던 내 감정은
  • 꺼져가던 모닥불처럼 되살아나고
  • 일말의 동정심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는
  • 계절의 끝자락을 손으로 붙잡는다.
  • 갈대꽃이 너울대는 강가에는
  • 쓸쓸한 기운이 안개처럼 서려 있고
  • 흐르는 듯 서 있는 듯 모호한 강물에는
  • 누군가의 추억이 깊이 고여있다.
  • 계절은 갈 때마다 나의 시간을 징수하여
  • 일평생 내다보니 껍데기만 남았다.
  • 나는 처음부터 시간을 계산할 줄라
  • 징수원의 감언에 바보처럼 놀아났다.
  • 줄줄이 피어나는 꽃향기에 취하고
  • 몸을 뒤틀던 요염한 능소화 줄기에 감겨
  • 할당된 나의 시간을 도둑맞았다.
  • 탱탱하던 주머니 끈을 풀고 들여다보니
  • 밑바닥에 깔린 한 줌마저도 사라졌다.
  • 계절이 간다는 것이 무섭다.
  • 2022.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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