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어떤 두려움

신사/박인걸 2020. 4. 28. 06:55
반응형

어떤 두려움

 

해는 그 길로 걸어 방금 산을 넘었다.

밀려온 어두움이 골목을 덮으면

가던 바람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병정처럼 늘어선 전봇대가 불을 밝히면

사람들은 제각기 바쁘게 돌아가고

어둑한 주차장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꽃 잎 떨어진 마을 공원에도 인적이 끊겼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칠 때

그때의 두려움이 숨겨둔 뇌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언제나 이런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만성 조울증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나의 낡은 구둣발은 연신내 둑을 걸었고

안주머니에는 지폐한 장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봉천동 가는 버스는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고작 구멍 난 토큰 하나가 날 쳐다봤다.

나름대로의 포부(抱負)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근근이 고학으로 학문을 습득하던 때

허기진 창자가 파전 한 장을 원했으나

소원을 채워 줄 동전 몇 푼이 없었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기간은

소유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으나

가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시간(時間)은

바늘로 손톱 밑을 파내는 아픔이었다.

지금도 어둠이 길 끝에서 밀려올 때면

어떤 두려움은 연신내 둑길에 나를 세운다.

2020.4.28

반응형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 언덕에서  (0) 2020.04.30
연읍(戀泣)  (0) 2020.04.29
어떤 노인  (0) 2020.04.27
아침 안개  (0) 2020.04.25
어느 봄날에  (0) 20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