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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두려움
해는 그 길로 걸어 방금 산을 넘었다.
밀려온 어두움이 골목을 덮으면
가던 바람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병정처럼 늘어선 전봇대가 불을 밝히면
사람들은 제각기 바쁘게 돌아가고
어둑한 주차장에 나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꽃 잎 떨어진 마을 공원에도 인적이 끊겼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칠 때
그때의 두려움이 숨겨둔 뇌리를 건드린다.
그것은 언제나 이런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만성 조울증 같은 것인지 모른다.
나의 낡은 구둣발은 연신내 둑을 걸었고
안주머니에는 지폐한 장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봉천동 가는 버스는 두 번 갈아타야 했는데
고작 구멍 난 토큰 하나가 날 쳐다봤다.
나름대로의 포부(抱負)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근근이 고학으로 학문을 습득하던 때
허기진 창자가 파전 한 장을 원했으나
소원을 채워 줄 동전 몇 푼이 없었다.
사람으로서의 품격을 갖추는 기간은
소유를 투자해도 아깝지 않았으나
가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시간(時間)은
바늘로 손톱 밑을 파내는 아픔이었다.
지금도 어둠이 길 끝에서 밀려올 때면
어떤 두려움은 연신내 둑길에 나를 세운다.
20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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