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런 세상

신사/박인걸 2025. 2. 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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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세상
  •  
  • 짙은 흙냄새 코를 찌르고
  • 아침 햇살 받은 앞산이 황금빛 될 때
  • 맞은편 산등성에 소나무들
  • 일제히 두 손 들고 노래를 부르면
  • 숲에서 잠을 깬 새떼는 풍선처럼 날아올랐다.
  •  
  • 하늘에는 유리 바다가 흐르고
  • 앞 강에는 은빛 물결이 춤을 추며
  • 펼쳐진 들녘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화답하던
  • 내가 태어난 땅은 에덴의 모퉁이다.
  •  
  • 불어오던 바람결은 신의 음성이고
  • 마을을 휘감는 아침 안개가 몽환 속에 가두면
  • 천사와 겨루어도 더 착한 농부들의
  • 소모는 소리가 마을의 고요를 가를 때면
  • 산골 마을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  
  • 자줏빛 감자꽃 일렁일 때
  • 우리 누나 얼굴보다 더 곱게 빛나고
  • 봄비 온종일 쏟아지던 날에는
  • 녹음이 넘쳐 흐르는 바다가 된다.
  •  
  • 산비둘기 구성진 노랫소리에
  • 강냉이밭 매던 동네 아낙네 서럽고
  • 보랏빛 콩꽃이 수줍게 피어오르던 날에
  • 꼴찌게 진 아버지 어깨 가여워
  • 하늘가 붉은 노을이 눈물 지었다.
  •  
  • 바람개비 날리며 들판을 달리던
  • 철없는 소년은 노을에 물든 길모퉁이에서
  • 꿈처럼 사라진 무지개를 보았고
  • 이 산과 저 산을 가로지른 영롱함에
  • 내 두 발은 길 위에 말뚝처럼 깊이 박혔다.
  •  
  • 덜 여문 작두콩 같은 나는
  • 새빨간 햇볕 아래 서툰 초록을 흔들며
  • 바람에 묻혀가는 꿈을 삼켰다.
  • 아무 이념도 없이 하룻강아지처럼 뛰놀던
  •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 20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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