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폭설(暴雪)

신사/박인걸 2025. 2. 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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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설(暴雪)
  •  
  • 흰눈이 뒤덮인 세상을 걸을 때
  • 나는 몽유도(夢遊圖) 속을 떠도는 줄 알았다.
  • 그러나 며칠을 지나며 깨달았다.
  •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 하늘이 뿌려놓은 유리 조각이었다.
  •  
  • 눈길 닿는 곳마다 덮인
  • 순백의 들판은 종교보다 거룩하고
  • 그 적막한 평화는
  • 시간조차 숨죽이며 머물러 있지만
  • 그것은 위장이었다.
  •  
  • 입술 끝에 맴도는 꿀 한 방울이자
  • 혀끝을 스치는 날카로운 칼날며
  • 줄기 속 가시를 감춘 채 웃는 흰 장미였다.
  • 하늘이 토해낸 얼어붙은 분노가
  • 세상을 덮어버릴 때
  • 비명조차 삼켜버린 마을들은
  • 순백의 무덤이 된다.
  •  
  •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와
  • 모든 발자국을 지워버리는 잔인함은
  • 소리 없이 세상을 집어삼키는 폭력이며
  • 천 개의 얼굴로 위장한
  • 눈(雪)의 테러였다.
  • 202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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