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설(暴雪)
- 그 해 겨울 눈이 처마까지 내렸고
- 동네 사람은 동굴토끼가 되었다.
- 굴뚝 연기로 신호를 보내며
- 온종일 넉가래로 눈을 치워도
- 구름 속에 갇힌 태양은 도와주지 않았다.
- 처음 보는 세상은 두려웠고
- 인적 끈긴 마을에는 정적만 흘렀다.
- 믿음직한 아버지는 여물을 쑤고
- 부엌의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 전화가 없던 그시절
- 동네 친구 소식이 궁금했지만
- 그림이 된 마을에서 나는
- 동화 속을 걷는다고 생각했다.
- 유난히 눈이 크던 암소와
- 나만 따라다니던 누렁이
- 근심 하나 없는 부뚜막 고양이를
- 오랜 세월 잊고 살아 미안하다.
- 그 시절 그토록 퍼붓던 눈이
-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 한 번쯤 나는 폭설에 갇히고 싶다.
- 202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