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그해 겨울

신사/박인걸 2021. 12. 3. 11:07
  • 그해 겨울
  •  
  • 그 시절 아주 긴 겨울을 보냈다.
  • 캄차카반도에서 쿠릴열도로 이어지는
  • 한겨울의 혹한보다 더 차가운 기운이
  • 무섭게 내 심장을 옥죄었다.
  • 입성마저 변변찮아 구멍 난 점퍼에는
  • 바람도 춥다고 숨어들었고
  • 혀를 길게 내민 신발은 발걸음을 집어삼켰다.
  • 헤르바이트학파의 단계이론이
  • 비록 추상개념이라 하더라도
  • 그곳에 견주어 유사점과 차이점의 곡선이
  • 너무 가파른 상황을 나는 수용하기 힘들었다.
  • 빈손으로 출발한 트랙경기에서
  • 아무리 내달린다 해도 가로막는 바람에 주저앉곤 했다.
  • 종로 뒷골목 가득한 음식 냄새는
  • 주린 배를 자극하며 입에 침이 괴어도
  • 나에게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었다.
  • 지팡이 없이 일어서는 일은
  • 확률 미분방정식보다 더욱 어려워서
  • 남대천으로 회귀하던 연어를 떠올렸었다.
  • 도시 밤거리에 경쟁하는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 기회의 불균형으로 선점의 효과를 잃어버린 나는
  • 빈들에 홀로 남은 가련한 철새였다.
  • 그해 겨울,
  • 긴 목을 빼내 들고 한강 언덕에서 밤새 울다.
  • 한강철교를 건너가는 긴 기적소리에
  • 방황과 시름의 끈을 끊어버렸다.
  • 그 소리는 나의 의지를 책망하는 신의 우레였다.
  • 지금도 가끔은 기적(汽笛) 소리가 그립다.
  • 20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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