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봄날 오후

신사/박인걸 2020. 4. 1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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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오후

 

꽃향기는 경계선 없이 흩날리고

오후 햇살은 화살처럼 쏟아진다.

그림자는 일제히 동쪽으로 비켜서고

귀룽나무 꽃가지에 나비 떼 존다.

길손 뜸한 숲길에는

앙증맞은 풀꽃이 오수(午睡)를 즐기고

앙당그레 뒤틀어진 고사목에

딱따구리 한 마리 열심히 굴을 판다.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연무에 갇혔지만

작은 숲에는 내가 원하는 평화가 흐른다.

차량들 질주하는 저 아랫마을에는

간판과 간판 사이에 뜨거운 불꽃이 튀고

온갖 지저분한 언어들이 휴지처럼 뒹군다.

팽팽한 긴장감은 고압 전류처럼 흐르고

웃음 뒤에 숨겨진 비수는 늘 상대를 조준한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걸어가는

치매 노인은 하나도 없다.

대낮에도 두 눈에 불을 켜고

먹잇감을 쫒는 아쿠라움의 물고기들이다.

나도 그 가운데 휩싸여

물레바퀴처럼 쉬지 않고 돌지 않았던가.

공해에 찌든 가슴을 솔바람에 헹구고

독기 가득한 두 눈을 꽃잎에 씻으면

머리카락처럼 일어서던 스트레스가

방광 아래로 가라앉는다.

4월의 하늘빛이 내 얼굴로 쏟아진다.

20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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