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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배나무 내 소년 시절 안뜰에늙은 돌배나무 한 그루사계절이 나뭇가지에 달라붙어붉은 진액을 빨아먹었다. 봄이면 흰 나비 떼 같은 꽃잎이여름이면 수만 개 푸른 잎들이가을이면 고드랫돌 같은 돌배가나무 속살까지 갉아 먹고겨울이면 돌배나무는 알몸이 된다. 비바람 휘몰아치던 밤에도한겨울 흰 눈이 쌓이던 밤에도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늠름한 자세로 햇살에 빛났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바람에 난타당한 가지는 주저앉고추위에 찔린 가지는 말라가며벌레에 갉힌 밑동은 패이고계절을 잃어버린 나무는 스러졌다. 그토록 강인하던 의지도서서히 시간에 깎여만 갔다.내어 주기만 하고 채우지 못한 나무는내 아버지처럼 그렇게 무너졌다.그리고 봄이 와도 다시 피지 않았다.2025,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