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비 찬비 을씨년스런 초겨울 비에 간당간당하던 나뭇잎들이 힘없이 곤두박질 칠 때 내 가슴 한 편이 서늘하다. 못 다한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잎들은 저항(抵抗)할 틈도 없이 붙잡았던 손을 놓아야 하는 낙엽의 마지막길이 슬프다. 어지럽게 널린 잎들은 우아함은커녕 빗물에 젖어 초라한 몰골.. 나의 창작시 2019.11.15
진실 진실 입들이 숨을 거두는 숲에는 진실한 간증(干證)이 색으로 빛난다. 열정을 다한 단풍잎은 붉고 시련을 견딘 잎들은 샛노랗다. 살펴본 잎들은 상처를 입었어도 일체의 속임이 없어 곱다. 다양하게 채색(彩色)된 풍경은 순수 그 이상을 보여준다. 거짓과 위장과 속임으로 도배 된 탁류(濁.. 나의 창작시 2019.11.14
가을 공원 가을 공원 더 이상 부지(扶持)할 수 없다는 것을 단풍잎들은 스스로 알고 있다. 임대(賃貸)해 사용하던 공간이 비록 옹색한 자리였지만 마음껏 고운 꿈을 펼치면서 여한 없이 한 시절을 보냈다. 이제는 훌훌 날아서 피안(彼岸)의 세계로 갈 때가 되었다. 번뇌와 갈등의 늪을 벗어나 현실 밖.. 나의 창작시 2019.11.09
가을 빛 가을 빛 짙푸른 물감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하늘아래 샛노란 블라우스를 걸쳐 놓은 듯 은행나무 가지가 바람에 출렁인다. 이토록 짙게 염색(染色)된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던 충동은 닫히고 어느 법정에 선 듯 마음이 숙연하다. 젊음보다 더 싱싱하던 계절(季節)이 북동풍 .. 나의 창작시 2019.11.04
늦가을 늦가을 도가니에서 끓는 순금처럼 11월의 은행잎은 샛노랗게 익고 칼에 베인 듯 단풍나무마다 붉게 익어 마냥 곱다. 말씬말씬한 홍시(紅柹)는 익다 못해 흐무러지고 가지 끝에 달린 사과는 소녀의 볼처럼 익어 예쁘다. 가마솥에서 쪄낸 옥수수 같이 세상은 온통 무르익어 정신을 아찔하게 .. 나의 창작시 2019.11.02
안개 안개 11월의 첫날 새벽 나는 안개 자욱한 거리에 서있다. 건물(建物)을 지우고 길을 지우고 아름다운 단풍도 지웠다. 거칠던 도시는 차분하고 고독하던 질주도 완보(緩步)한다. 굉음(轟音)은 자취를 감추었고 가로등도 촉수를 낮추었다. 분요(紛擾)한 세상에 잠시나마 안식을 주려고 안개는.. 나의 창작시 2019.11.01
오늘 오늘 시인/박인걸 절후(節候)도 잊고 신속히 흐르는 광음(光陰)도 잊고 차가운 바람에 흩어지는 찢긴 은행(銀杏)잎 같고 싶다. 분노의 그림자에 눌려 공상(空想)이 따르는 깊은 슬픔이 명치끝을 송곳질 하며 거친 광야(廣野)에 나를 내팽개친다. 출렁이던 푸른 잎 새들이 싯누렇게 검불 되.. 나의 창작시 2019.10.30
외딴 섬 외딴 섬 오래 전부터 내 가슴엔 하나의 외딴 섬이 떠돈다. 너울에 떠밀려 방황(彷徨)하는 외로운 나그네이다. 거리마다 인파(人波)가 출렁이고 홍수처럼 차들로 넘쳐나는데 나는 외로운 낙도(落島)가 되어 누군가를 매일 기다린다. 그리움이 겹겹이 쌓이고 외로움이 켜켜이 다져지면 잿빛 파도를 깨고 떠오르는 불쌍한 섬이다.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다가 밤하늘별을 헤아리다가 지쳐서 기운이 빠지면 파도(波濤)위에 몸을 내어 맡긴다. 때로는 삶에 지치거나 서러움이 북받쳐 오를 때 외딴 섬에 깊이 숨으면 태양(太陽)이 안으로 들어온다. 2019.10.28 나의 창작시 2019.10.28
가을 산길에서 가을 산길에서 무연(無緣)의 늙은이들과 더딘 발걸음으로 오르는 가을 색 짙은 등산(登山)로에는 유현(幽玄)한 분위가 감돈다. 추색 짙은 그늘에는 서늘한 기운이 옷깃을 파고들고 이미 검불이 된 잡초에서 삶의 무상(無常)을 본다. 등산화에 밟히며 바삭거리는 가랑잎들의 아우성은 영면(.. 나의 창작시 2019.10.25
단풍 단풍 거대(巨大)한 산불이 한반도를 불태운다. 봉우리에서 시작하여 들판으로 내리달린다. 플리즈마의 역설(逆說)이 해마다 펼쳐지지만 논리의 모순 앞에 아무도 이의제기를 않는다. 고산(高山)중턱을 넘어 낮은 산들을 태우고 도시전체를 방화한 불은 사람들 가슴으로 옮겨 붙었다. 바람.. 나의 창작시 2019.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