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벌판
연해주 벌판 시야에 산(山)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으로 펼쳐진 평평한 저 공간에는 낯 설은 잡초들만 나부끼고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地平線)에는 꿈에서 누리던 고요함이 가득하다. 나는 지금 연해주 땅을 밟고 피란 온 선조(先祖)들의 족적을 따라 피눈물을 쏟던 구술(口述)을 들으며 한숨이 절로 튀어나오는 옛 집터에서 망향가를 부르던 촌로(村老)를 떠올린다. 두만강(豆滿江)을 건너 향방 없이 걷다 인적 없는 벌판에 초막을 짓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땅을 일구어 국적(國籍) 없는 야인으로 살았단다. 아! 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내 나라 내 터전을 빼앗긴 채 발이 부릅뜨도록 걸어 주저앉은 땅이여! 눈물에 밥을 지어 한숨을 반찬삼아 들짐승처럼 살았다던 선조의 넋이여 아카시아뿌리처럼 끈질긴 생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