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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앞에서
백골만 앙상한 가슴은
비 오는 날에도 우두커니 서서
쏟아지는 빗물을 쫄딱 맞으며
잃어버린 시간들의 기억까지 잊었다.
수만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
억만의 잎을 하늘위로 쏟아 부으며
굵은 나이테를 만들기 위해
한 번도 눕지 못한 채 휘청거렸다.
밤하늘 별 보다 많은 시간들을
오로지 거목의 꿈 하나에 전부를 걸고
치솟는 패기를 오장육부에 쏟아 부었다.
시름시름 앓던 시간들이
어느 날 전깃줄처럼 끊어지던 날
잎과 껍질을 모두 벗겨가고
일어선 채로 고사목이 되었다.
유령처럼 흐느적대는 고사목을 보면
머잖아 들통 날 내 신세 같아 씁쓸하다.
오늘은 쏟아지는 햇살도 차갑다.
202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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