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아버지

신사/박인걸 2021. 6. 16. 23:08

아버지

 

새벽은 언제나 나무숲에 걸려 있었고

아침 햇살은 뒷산을 기어오르느라 지체했다.

그는 언제나 시간을 붙잡아 매놓고

밭두렁에 앉아 아침을 깨우셨다.

혁세공의 거친 손보다 더 굵은 손마디로

벼 포기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달려드는 가난의 목을 베느라

조선 병사(兵士)처럼 용맹하게 싸우셨다.

꽉 다문 입에 고개 한번 끄떡이지 않으며

예리한 두 눈에서 발산되는 빛은

언제나 전뢰(電雷)를 방불케 하였다.

어떤 격랑(激浪)도 그의 영역을 넘지 못했고

사라 호 태풍도 그 앞에서는 잠잠했다.

화토 쪼가리의 그림을 읽을 줄 몰랐고

장담뱃대에 썬 담배를 담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가 비탈길이었지만

한 발이 미끄러져도 다른 발로 땅을 디뎠다.

등 짐이 무거워도 신음소리 한 번 없었고

진구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오뚝이처럼 신기하게 일어났다.

암울한 세월 메마른 땅을 걸었지만

뜻은 상수리나무 상순(上筍)에 걸어 놓았다.

때론 내 삶이 난곡(難曲)만큼 힘들 때면

아버지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문다.

202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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