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새벽은 언제나 나무숲에 걸려 있었고
아침 햇살은 뒷산을 기어오르느라 지체했다.
그는 언제나 시간을 붙잡아 매놓고
밭두렁에 앉아 아침을 깨우셨다.
혁세공의 거친 손보다 더 굵은 손마디로
벼 포기 하나하나를 쓰다듬으며
달려드는 가난의 목을 베느라
조선 병사(兵士)처럼 용맹하게 싸우셨다.
꽉 다문 입에 고개 한번 끄떡이지 않으며
예리한 두 눈에서 발산되는 빛은
언제나 전뢰(電雷)를 방불케 하였다.
어떤 격랑(激浪)도 그의 영역을 넘지 못했고
사라 호 태풍도 그 앞에서는 잠잠했다.
화토 쪼가리의 그림을 읽을 줄 몰랐고
장담뱃대에 썬 담배를 담지 않았다.
서 있는 자리가 비탈길이었지만
한 발이 미끄러져도 다른 발로 땅을 디뎠다.
등 짐이 무거워도 신음소리 한 번 없었고
진구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도
오뚝이처럼 신기하게 일어났다.
암울한 세월 메마른 땅을 걸었지만
뜻은 상수리나무 상순(上筍)에 걸어 놓았다.
때론 내 삶이 난곡(難曲)만큼 힘들 때면
아버지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문다.
202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