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기다림 능소화 기다림 하늘에서 날아 내려 온 어느 천사 날개의 刺繡처럼 연자줏빛 찬란함으로 마음을 흔드는 능소화여! 전봇대에 기대섰다가 낡은 집 토담에 걸터앉았다가 낮은 슬래브 집 옥상에 서서 목을 빼들고 누구를 기다리나 바람 한 점 없는 여름 날 입술을 자근이 깨물며 저녁 해 그림자를 밟으며 가슴만 붉게 타들어 가누나. 모퉁이를 돌아오실까 발자국 소리라도 들릴까 등 뒤로 와서 놀래 주시려나. 오늘도 하루해가 저무는데. 2015.7.3.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레나무 찔레나무 버려진 땅에서 아무렇게나 자라 자유분방하게 뻗는 가지에 초라하지 않은 꽃잎이 수줍게 피어나니 귀엽다. 가시를 곤두세우고 까칠한 모습으로 노려보며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 뻗은 팔로 손사래를 젖는다. 환영받지 못할 존재임을 스스로 잘 알기에 마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입느니 처음부터 다가오지 말라한다. 눈길을 끌지 못할 외모지만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긴긴 가뭄에도 견뎌내며 억척같이 살아가니 대견하다. 2015.7.9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질그릇 질그릇 어느 낡은 박물관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질그릇들이 옛 주인을 못 잊어 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다. 어느 도공의 옹기가마의 뜨거운 불속에서 연단되어 작품이라며 인정받아 어느 집 밥상에서 사랑받았으나 도자기에 밀려 소박을 맞고 가슴 깊이 상처를 남긴 채 지금은 쓸쓸히 뒹굴고 있는가. 더러는 이가 빠지고 잔금이 거미줄처럼 얽혀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색깔마저 바랜 질그릇이여 황실에서 쓰임 받던 청자 백자 청화산수화조문이 못돼도 순수와 투박함으로 농부의 가슴을 덥혀주며 서민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던 모나지 않은 질그릇에서 나는 농부였던 내 아버지를 본다. 2015.7.18 나의 창작시 2015.07.28
빗소리 빗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박자를 맞추는 낙숫물소리와 리듬이 흐르는 빗소리에 잠자던 의식이 살며시 기지개를 편다. 나지막한 어머니 자장가가 어린 가슴을 어루만질 때면 무장을 해제 당한 채 나는 깊은 꿈속을 산책한다. 고단한 농부 아버지가 이런 날이면 대청마루에 누워 기차화통 삶아먹던 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가슴을 울린다. 건넛집에서 울려오는 다듬이소리 부엌에서 빈대떡 굽는 소리 양철지붕 뒤집던 소낙비소리가 조용한 마음을 마구 흔든다. 토란잎에 구르던 빗방울만큼 맑은 눈동자의 소녀와 비닐우산을 함께 쓰고 걷던 시골길도 눈에 보인다. 혼곤한 도시 생활에 찌든 여유 잃은 나그네 가슴에 겹겹이 쌓인 낡은 먼지들을 말끔히 닦아내고 있다. 비야 하루 종일 내려다오. 2015.7.25 카테고리 없음 2015.07.28
희망 희망 태풍이 지나간 자리 중상을 입은 아카시아 나무가 쥐어뜯긴 나뭇잎들과 끝내 버티지 못한 느티나무를 보며 긴 한숨을 쉬고 있다. 피어나던 꽃들은 고개를 숙였고 연한 순들은 바들바들 떤다. 산사태가 훑고 지나간 자리는 전쟁의 상처보다 더 크고 벼락 맞은 나무는 싸매는 주는 이도 없다. 희망은 바다 속에 가라안고 꿈은 진흙탕에 묻혔다. 하지만 참화를 맞은 숲은 정신을 차리고 넘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일어선다. 야생화는 더 진하게 피어나고 목이 꺾인 잡초에서 새순이 돋아난다. 헝클어진 숲은 제자리를 찾고 슬픔에 잠긴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드넓은 숲은 하나가 되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말없이 일한다. 하늘이 열려있어서다. 구름한 점 없이 활짝 열려있어서다. 뜨거운 여름 태양빛이 이글거리며 상처 입은 숲에 희망.. 나의 창작시 2015.07.28
씨앗의 꿈 씨앗의 꿈 한 알의 씨앗이 큰 꿈을 안고 죽더니 수만(數萬)의 분신들이 새 생명으로 부활했다. 여린 잎사귀마다 봄바람이 할퀼 때면 아픈 상처마다 눈물로 닦아내고 길고 긴 여름날에 스스로 주저앉지 않고 바람이 짓밟아도 수천 번 다시 일어서서 터질 듯이 여문 열매들의 찬양이 황금빛으로 출렁이며 가을 하늘로 퍼지고 있다. 2010,9,25 카테고리 없음 2010.10.22
내 고향 내 고향 솔 잎 향이 숲에서 날아들고 갈잎 헹군 바람이 언덕을 내려오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던 때 묻지 않은 고향에 가고 싶다. 산에는 산꽃이 들에는 들꽃이 사시사철 줄지어 피어나는 무릉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그리운 고향에 가고 싶다. 종달새는 하늘을 날고 염소 떼가 풀을 뜯고 맹꽁이가 밤마다 노래하던 내 고향 보다 더 좋은 곳 있을까. 냇물은 온 종일 지줄 대고 구름도 힘들면 쉬어가고 사철 꽃비가 곱게 내리던 어머니 품 같은 내 고향이여 2010,10,3 카테고리 없음 2010.10.22
삶 삶 멀쩡한 표정의 사람들도 만나보면 명치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고 살더라. 짓누르는 삶의 무게에 신음하며 병들어 가고 사랑을 받고 싶어 괴로워하고 사랑을 잃을까 몸부림치고 재물이 많아 잃을까 두렵고 너무 없어 한숨짓더라. 오만잡상(五萬雜想)으로 불면증에 잠 못 이루고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울며 화려한 차림이지만 속이 문드러진 사람도 있더라. 萬人이 부러워해도 실상은 아픈 사연을 안고 남 몰래 흘린 눈물이 강을 이루는 이도 있더라. 산다는 것은 빗줄기에 젖었다 바람에 흔들리다 캄캄 밤길을 홀로 걷다 어느 날 갑자기 안개처럼 사라지는 일이더라. 2010,10,6 카테고리 없음 2010.10.22
잡초의 꿈 잡초의 꿈 짐승에 밟히고 때론 인간에게 밟혀도 잡초는 다시 일어선다. 조상 적부터 잡초로 살아와 밟히는 일에 이골이 났다. 자신들의 신분을 알기에 화초를 부러워하거나 인간들이 북돋아 주는 채소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맨몸으로 태어나 비바람에 휘청거리며 까만 밤이면 두려움에 떨지만 아침 햇살을 기다리며 기나긴 시간을 견딘다. 농부가 휘두르는 낫날에 사정없이 몸이 잘려나가도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새 순으로 돋아나 저항한다. 잡초의 시들지 않는 꿈은 황무지에 꽃을 피우고 사막을 풀밭으로 바꾸며 삭막한 도시에 풀 냄새가 풍기는 자기들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전봇대와 콘크리트 담벼락까지 인간들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 오고 싶어 오늘도 안간힘을 다해 울타리를 기어오르고 있다. 2010,10,8 나의 창작시 2010.10.22
들국화 들국화 누구의 영혼이 연보랏빛으로 꽃잎에 스며들어 찬바람이 일 때면 밤이슬을 맞으며 곱게 피는 걸까 여름 내내 풀숲에서 잡초로 살아온 세월 흠모할만한 모양은 네게 없어도 쓸쓸한 가을 들판을 우아하게 하는가. 나 먼먼 길 돌고 돌아 허비한 세월 기우는 석양 하늘아래 너처럼 고운 빛을 뿜을 수 있을까 찬 서리 내린다 해도 두렵지 않은 강인한 들국화여 네 모양이 마냥 부럽다. 2010,10,15 나의 창작시 2010.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