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플라타너스 잎이 큰 바람에 부딪힐 때
찢어지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누렇게 병든 이파리들은
견디다 못해 아스팔트위에 몸을 던졌다.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생존이 버거워
때로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가족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화단에서 숨을 거뒀다.
15층 아파트 그 집에 불어 닥친 바람은
가여운 영혼들을 잔인하게 데려갔다.
사나운 바람은 존재를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목숨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화단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종종걸음으로 그 앞에서 사라진다.
오늘 분 바람은 센 바람은 아니었는데
유독 그 집에만 광풍(狂風)이 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도 여러 번 큰 바람이 불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붙잡느라 애를 먹었다.
명치끝에 돌멩이를 여러 개 달아놓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었다.
누군가가 붙잡아 줄 수 없는 손은
하늘을 향해 뻗어야 도움을 받는다.
바람은 못된 사람에게만 부는 것은 아니며
미친 여자처럼 쏘다니며 무작위로 괴롭힌다.
바람이 불 때는 얼른 숨어야한다.
안전한 곳을 나는 알고 있다.
바람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
나는 잔뜩 자세를 낮춘다.
202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