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바람이 분다.

신사/박인걸 2021. 6. 22. 04:15

바람이 분다.

 

플라타너스 잎이 큰 바람에 부딪힐 때

찢어지겠다고 소리를 지른다.

누렇게 병든 이파리들은

견디다 못해 아스팔트위에 몸을 던졌다.

살아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생존이 버거워

때로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가족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아직 꽃이 피지 않은 화단에서 숨을 거뒀다.

15층 아파트 그 집에 불어 닥친 바람은

가여운 영혼들을 잔인하게 데려갔다.

사나운 바람은 존재를 흔들고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목숨을 앗아간다.

사람들은 화단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종종걸음으로 그 앞에서 사라진다.

오늘 분 바람은 센 바람은 아니었는데

유독 그 집에만 광풍(狂風)이 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도 여러 번 큰 바람이 불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을 붙잡느라 애를 먹었다.

명치끝에 돌멩이를 여러 개 달아놓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었다.

누군가가 붙잡아 줄 수 없는 손은

하늘을 향해 뻗어야 도움을 받는다.

바람은 못된 사람에게만 부는 것은 아니며

미친 여자처럼 쏘다니며 무작위로 괴롭힌다.

바람이 불 때는 얼른 숨어야한다.

안전한 곳을 나는 알고 있다.

바람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지나간다.

나는 잔뜩 자세를 낮춘다.

2021.6.22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치자나무 꽃  (0) 2021.06.24
도시에 내리는 비  (0) 2021.06.23
들풀  (0) 2021.06.21
COVID-19 vaccine  (0) 2021.06.19
아버지  (0) 2021.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