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시

도시에 내리는 비

신사/박인걸 2021. 6. 23. 10:40

도시에 내리는 비

 

공지(空地)서 자라는 푸른 생명체들은

온종일 매연을 삼키며 폐병을 앓고

어쩌다 도시 꽃송이를 찾아 온

바보 같은 벌들은 빈 날개 짓만 한다.

나는 플라타너스 늘어선 인도 위를 걸으며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지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는 내 세례식 때

머리에 붓던 관수(灌水)만큼이나 성스러워서다.

먼지 구덩이에서 나온 차(車)마다

일시에 자동세차기를 통과한 듯

말끔한 모습으로 내달리고

빗길을 걸어가는 젊은 사람은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무릎 위를 다 드러낸 여학생들은

멘 가방이 젖어도 깔깔대며 걷는다.

아무도 비를 탓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우산이 없어도 뛰어가지 않는다.

적당히 내리는 비는 가슴을 적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을

일시에 안도(安堵)시키고 있다.

다만 조금 전 꽃을 배회하던 그 벌이

빗길에 집을 찾아갈지 맘에 걸린다.

나는 이런 날이 행복하다.

2021.6.23

'나의 창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행 추론법  (0) 2021.06.27
치자나무 꽃  (0) 2021.06.24
바람이 분다.  (0) 2021.06.22
들풀  (0) 2021.06.21
COVID-19 vaccine  (0) 2021.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