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내리는 비
공지(空地)서 자라는 푸른 생명체들은
온종일 매연을 삼키며 폐병을 앓고
어쩌다 도시 꽃송이를 찾아 온
바보 같은 벌들은 빈 날개 짓만 한다.
나는 플라타너스 늘어선 인도 위를 걸으며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흠뻑 맞았지만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는 내 세례식 때
머리에 붓던 관수(灌水)만큼이나 성스러워서다.
먼지 구덩이에서 나온 차(車)마다
일시에 자동세차기를 통과한 듯
말끔한 모습으로 내달리고
빗길을 걸어가는 젊은 사람은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고
무릎 위를 다 드러낸 여학생들은
멘 가방이 젖어도 깔깔대며 걷는다.
아무도 비를 탓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우산이 없어도 뛰어가지 않는다.
적당히 내리는 비는 가슴을 적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던 사람들을
일시에 안도(安堵)시키고 있다.
다만 조금 전 꽃을 배회하던 그 벌이
빗길에 집을 찾아갈지 맘에 걸린다.
나는 이런 날이 행복하다.
2021.6.23